이커머스 시장 경쟁 속에서 수년간 적자와 자본잠식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티몬과 위메프는 재무제표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밝혀왔으나, 일반 고객들의 관심에서는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객들이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신뢰도를 중요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되고, 탄탄한 재무구조와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플랫폼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관계당국이 최근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을 대상으로 거래량·판매자 동향 등을 살펴본 결과 특이사항은 감지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날 배포한 ‘위메프·티몬 사태 관계부처 대응방안’ 자료를 통해 대다수는 정산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자체 상황점검 및 위기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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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오전부터 11번가는 공식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에서 ‘안심하고 쇼핑하라’는 배너를 띄우고 빠른 정산과 결제대금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자사 서비스의 안정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앞으로 장바구니에 물건 담아두고 결제할 때마다 플랫폼 기업 재무제표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인데, 그만큼 온라인 쇼핑 기업에 대한 고객 신뢰가 전반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에서도 ‘티메프 사태’로 인해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 지형이 요동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커머스 시장 환경 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며 상위업체 위주로 시장이 급격하게 개편되는 구조를 맞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이커머스 시장의 상위업체는 대체로 탄탄한 매출과 수익,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춘 곳으로 종합몰 기준으로 네이버(쇼핑)와 쿠팡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네이버의 경우 이커머스 외에도 광고, 검색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태로 올해 1분기말 기준 자본총계가 24조5400억원에 달할 만큼 안정적인 재무건전성을 갖추고 있다. 네이버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조2374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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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누적 결손금이 쌓여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자산 규모와 유동성 측면에서 흔들림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쿠팡이 지난해 공개한 2023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본총계는 2조9834억원으로 전년도 6151억원에서 4배가량 증가했다. 아울러 현금 및 현금성자산도 2022년 2조3636억원에서 지난해 4조2900억원으로 거의 2배 늘었다. 다만 누적 미처리 결손금이 3조8675억원 가량 쌓여있으나 전년에 비해서 감소하고 있는 추세고, 현재 보유한 유동성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수치로 볼 수 있다.
이커머스 시장이 세분화되며 카테고리별 전문성을 갖춘 ‘버티컬 플랫폼’ 중에서도 종합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견고하게 성장한 기업들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여행·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야놀자와 패션 부문에서의 무신사를 꼽는다.
먼저 야놀자의 경우 2024년 1분기말 연결 기준 자본총계가 1조4056억원에 달한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전년 동기대비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약 5500억원을 갖추고 있다. 야놀자의 실적도 2021년 매출액 3300억원에서 2023년 7667억원으로 2년만에 2배 이상 성장할 만큼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무신사도 2023년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하는 9931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종합몰 이커머스 업체 중에서 11번가(8654억원)는 넘어선 것이며 지마켓(1조1967억원)보다는 적은 수치다. 아울러 무신사의 자본총계도 6803억원에 달하고 현금 및 현금성자산도 2023년말 기준 4200억원이나 확보해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과 네이버의 경우 이제 대기업집단에 속할 만큼 규모의 경제를 갖춰서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라며 “야놀자와 무신사는 시리즈C 이상 투자도 유치할 정도로 실력과 자본력을 갖추고 있어서 버티컬 플랫폼 중에서 손꼽히는 우량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대기업 계열사라는 믿을만한 ‘뒷배’가 없는 상황에서 자체 생존 경쟁력도 상실해가고 있는 곳들에 대해서는 언제든 경보음이 울려도 이상할 게 없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곳이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인데, 2023년말 기준 매출액이 2조773억원에 달하는 대형 이커머스 기업이다. 하지만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올해 1분기말 기준 자본총계가 1286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023년말에는 78억원에 불과했으나 올 상반기 흑자 전환에 힘입어 재무 구조가 개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2000억원에 불과하다.
버티컬 플랫폼 중에서는 자본잠식으로 인한 불안정한 재무구조와 장기 적자에 따른 대규모 결손금이 쌓인 곳들도 적잖다. 특히 패션·명품 플랫폼 중에서 다수가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동대문 여성 패션앱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의 경우 2015년 법인 설립 이후 2022년까지 7년 연속 적자가 이어진 탓에 쌓여있는 결손금만 2042억원에 달한다. 2023년에는 3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누적 결손금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부채총계가 1672억원으로 1129억원인 자산 총계보다 많아서 마이너스 543억원 수준의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명품 플랫폼 시장에서 소위 ‘머트발’로 불리는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3개 업체들은 각각 236억원, 654억원, 785억원의 대규모 미처리 결손금이 남아 있다. 심지어 발란은 지난해말 기준 부채총계가 자산총계보다 많은 자본잠식에 빠졌고, 이에 대해 외부 감사인도 감사보고서를 통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패션잡화 영역의 리셀 플랫폼 ‘크림’을 운영하는 네이버 손자회사 크림(KREAM)은 2023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자산총계(2771억원)보다 부채총계(5351억원)가 더 많아서 마이너스 2580억원 수준의 자본잠식 상태에서 쌓여있는 데다가 2020년 서비스 론칭 이후 쌓인 누적 결손금이 3414억원에 달한다. 그나마도 크림은 다른 버티컬 플랫폼들과 달리 네이버라는 든든한 모기업을 갖추고 있어서 매년 수백억씩 차입금을 받아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커머스 재직자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온엠디(ONMD) 매거진’에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오픈마켓들의 경쟁 시대는 사실상 저물게 될 것이며 쿠팡의 독주 체제 고착화, 네이버 쇼핑과 소수의 버티컬 플랫폼들이 이커머스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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