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란(무제한토론) 특정 법안의 표결을 막기 위한 방해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로 다수당의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소수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긴 시간 동안 발언하거나 회기 진행을 늘어뜨려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습니다. 어원은 스페인어 ‘filibustero'(필리버스테로)로 16세기 해적 혹은 약탈자를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네브래스카법 의결 당시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 진행을 방해하며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 106조의2에 해당됩니다. 본회의 안건에 대해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이 요구하면 발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토론자가 없거나 재적의원 5분의3 이상이 동의하면 중단됩니다. 필리버스터로 회기가 종료되면 무제한 토론 탓에 처리가 보류된 안건은 다음 회기 첫 번째 본회의때 첫째 안건으로 자동 표결 처리됩니다.
국내에서는 1964년 4월 20일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인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저지한 필리버스터가 최초입니다. 김준연 의원은 한일협정 과정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일본으로부터 1억 3000만 달러를 들여와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당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화장실에 한 차례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 5시간 19분 동안 원고 한 장 없이 일장연설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22대 국회 시작부터 필리버스터가 한창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추진하는 ‘방송4법'(방통위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입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방통위법)이 지난 25일 오후 5시 29분 상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총 24시간 7분이 걸렸습니다. 26일 시작된 방송법 개정안 관련 필리버스터는 30시간 20분에 걸쳐 28일 새벽에 끝났습니다. 이어서 상정된 방송문화진흥법 역시 31시간 만에 가결됐습니다. 여당 의원들은 세 법안이 통과되는 동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법안으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습니다. 이 법안은 EBS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언론 관련 단체·학회 등에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0일 오전 7시 29분까지 필리버스터가 이어지면 110시간을 채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는 언제일까요, 2016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8일 이상(192시간 27분) 진행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입니다. 총 38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필리버스터는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 국회에서 처음 적용됐습니다. 당시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헌법전문을 읽어 화제가 됐고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두 번째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21명의 의원이 공수처법·국정원법·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의결을 막기 위해 참여한 필리버스터입니다. 2020년 12월 9일부터 14일까지 89시간 5분이 걸렸습니다. 22대 국회 방송4법 반대 필리버스터가 마무리 되면 역대 2위 기록을 갱신하게 됩니다.
헌정사상 가장 긴 필리버스터 기록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과 관련해 열린 필리버스터였습니다. 윤 전 의원은 12시간 47분 동안 발언해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이 보유한 국내 최장 기록 12시간 32분을 깼습니다.
현 22대 국회는 야당의 법안 단독강행, 여당의 필리버스터, 재표결,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법안 폐기 등의 순으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필리버스터는 시간 끌기만 가능할 뿐 수적 열세로 법안 통과를 막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피로감과 실효성에 대한 자조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방송4법 강행처리가 끝난다고 해도 여야 쟁점 법안들은 계속 본회의 식탁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전 국민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법’과 ‘노란봉투법’ 처리를 추진 중입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응해 또 다시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낸다는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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