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홍유진 기자 =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지난해 10월 ‘마약 세관 연루 사건’과 관련해 최초로 작성한 보도자료(초안)에는 조직원들이 마약을 반입한 방법과 통관 관련 내용이 상세히 포함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최종 보도자료에는 해당 내용이 삭제돼 수사 외압 의혹이 확산한 상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다국적 마약 조직원들이 인천공항으로 필로폰을 대량 밀반입하는 과정에서 세관 직원들이 통관절차를 눈감아줬다는 의혹이다.
외압 의혹 당사자인 조병노 경무관과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백해룡 경정이 오는 29일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서면서 마약 세관 연루 사건은 인사청문회 뇌관으로 떠올랐다.
◇삭제 수정 문장 모두 ‘세관’ 관련됐다
28일 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도자료 초안에는 세관 직원들의 연루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말레이시아 밀반입 필로폰(27.8㎏ 압수) 대량 국내 유통시킨 국제연합 법죄조직 검거’라는 제목의 자료다.
보도자료 초안의 ‘향수 수사계획’에는 “필로폰 국내 반입 시 입국심사 및 통관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한편”이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이 자료는 지난해 10월 5일 서울청에서 검토됐는데 닷새 뒤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이 국내에 마약을 들여온 방식도 보도자료 초안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됐었다. 초안에는 “조직원 신체 부착 42㎏ 및 국제화물 위장 반입 32㎏ 총 74㎏ 국내 밀반입된 것을 확인했다”고 적혀있었다. 해당 대목 역시 최종 보도자료에서는 빠졌고, ‘인편으로 반입’ 등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삭제되거나 수정된 문장들은 세관과 관련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이 작성한 보도자료 초안의 내용 일부가 빠지거나 수정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문제는 당시 서울경찰청 간부였던 조 경무관이 영등포경찰서 수사팀 책임자인 백 경정에게 전화해 ‘관세청 관련 내용’을 빼달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다. 조 경무관은 경찰 서열 네 번째 계급이지만 마약 사건과 관련해 공식 지휘계통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다만 ‘공식 지휘계통’ 서울경찰청 간부도 영등포경찰서 수사팀과의 회의에서 보도자료 내 관세청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서울청 간부와 영등포서 수사팀이 회의한 날, 조 경무관이 백 경정에게 전화한 날 모두 지난해 10월 5일로 같아 의문이 증폭됐다. 회의는 오전에 열렸고 조 경무관의 전화는 오후 5시쯤 있었다.
사실상 별개의 결정이었다고 해도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의 간부뿐만 아니라 공식 지휘라인에도 없는 조 경무관까지 삭제를 언급한 만큼 백 경정 입장에서는 외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세관 구역 몰래 통과” 운반책의 진술
보도자료가 작성되기 세 달 전인 지난해 7월부터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은 인천공항 세관 직원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운반책은 “밀반입 루트와 계획을 세관 직원들이 알고 있었고, 운반책들의 얼굴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통과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해당 항공편에서 내린 모든 승객이 검역대를 통과했어야 하는데 세관 구역으로 몰래 통과할 수 있게 빼줬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아무리 조직원의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했더라도 타 기관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데다,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언론 브리핑에서 관세청을 언급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한 경찰 간부는 “보도자료에서 빠졌다고 수사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지 않냐”며 “실무적 판단에 따라 보도자료에서 세관 내용을 뺀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수사 외압 의혹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4일 직권으로 조 경무관을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백 경정이 최근 화곡지구대장으로 이동하는 좌천성 인사 발령이 난 데다 공보 규칙 위반 등을 이유로 조 후보자의 경고 조치를 받으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부남 의원은 “이번 마약 수사 브리핑 보도자료 초안의 일부 문구들이 최종안에서 삭제되고 수정된 배경에 의문이 드는 만큼 이번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 경무관은 최근 ‘멋쟁해병’ 단체 대화방에서 인사 청탁 의혹으로 구설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멋쟁해병 멤버이자 조 경무관의 부속실장인 최 모 경위가 조 경무관의 승진을 로비했다는 것이다. 멋쟁해병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의 구명 로비 의혹에 연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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