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만큼 했다…나 이제 가노라.”
옛 소극장 ‘학전’을 이끌었던 김민기 전 대표(가수 겸 공연연출가)가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지난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은 지난해 가을께 위암 판정을 받은 후 힘겹게 투병생활을 해왔다. 암 투병중에도 학전, 그리고 음악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지만 결국 21일 별세했다.
24일 아침, 발인을 마친 후 유족과 고인의 선후배들은 장지로 가기 전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에 들러 고인을 추모했다. 이곳은 김 전 대표가 1991년 설립해 지난 3월 폐관하기 전까지 33년간 일궈온 소극장 ‘학전’이 있던 자리다.
2대중문화의 거목을 잃은 이들의 눈물이 극장 앞마당을 가득 적셨다.
1951년 3월 31일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중·고등학교를 거쳐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지만, 틀에 박힌 수업에 흥미를 잃은 그는 1970년 고교 동창인 김영세 전 이노디자인 대표와 ‘도비두’라는 이름으로 듀엣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71년 데뷔 앨범 ‘김민기’를 발매했다. 양희은이 불러 유명해진 ‘아침이슬’과 ‘상록수’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이 곡은 김 대표에겐 한동안 족쇄가 됐다. 초창기엔 건전가요로 지정되며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아침이슬은 불과 2년 뒤 ‘불온하다’는 이유에서 금지곡이 돼버렸다.
그는 시대의 상징이자 민주화 문화운동의 거목으로 통했다.
1970년대 후반 한국 노동운동의 정경이 담긴 1978년작 노래굿 ‘공장의 불빛’도 시대의 역작으로 통한다. ‘공장의 불빛’ 이후 1980년대에는 김제, 전곡 등에 머물며 소작 농사를 지었다.
고인은 생전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반영했다. 그의 음악 역시 민중가요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 대표곡 ‘아침이슬’을 작곡했고 1977년에는 ‘상록수’를 작곡해 발표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로 알려진 이 노래들은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됐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84년에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한 후 프로젝트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개관했다. 다양한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 공연예술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91년 3월 15일에는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개관했다.
김민기의 학전은 많은 이의 꿈을 심어주고 실현시킨 무대이자 상징이 됐다. 고(故)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 스타로 손꼽힌다. 그 밖에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유명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이다.
고인은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뮤지컬 ‘의형제'(2000) ‘개똥이'(2006)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을 연출했다.
2001년에는 뮤지컬 ‘의형제’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부문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또 ‘지하철 1호선’을 통해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아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학전은 지난 1월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공로상을, 지난 2월 ‘제21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받았다. 고인의 열정과 노력, 그것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이후 고인의 건강이 악화하고, 재정난까지 겹치며 학전 운영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배우, 가수, 예술인 50여 명이 힘을 보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개관 33년 만인 지난 3월 15일 결국 폐관했다.
지난 22일 빈소를 찾은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역경과 성장의 혼돈 시대, 대한민국에 음악을 통해 청년 정신을 심어줬던 김민기 선배에게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한다”며 명복을 빌었다.
양희은은 고인을 ‘어린 날의 우상’으로 칭했다.
양희은은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대목을 좋아했다”며 “당시 같이 음악 하던 여러 선배님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학전 정신을 이어받아 학전을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아르코 꿈밭극장 곳곳에는 학전의 숨결이 스몄다. 학전 소극장 시절 입구에 세웠던 김광석 추모비, ‘지하철 1호선’의 독일 원작을 썼던 폴커 루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흉상도 그대로 두었다.
예술위가 준비한 학전의 연혁을 밝힌 기념물도 한켠에 자리해있다. 기념물에는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학전 소극장은 총 359개 작품을 기획·제작하며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으로 동시대 삶과 시대정신이 살아 숨 쉬는 소극장 문화를 일궈냈다.
33년간 많은 공연예술인들의 성장 터전이자 관객들의 삶 속에 함께 한 공간이었으며, 한국 공연문화의 못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혔다.
김 전 대표는 하늘의 부름을 받는 그날까지도 낮은 자세로 임했다.
자신은 ‘뒷것’으로, 함께하는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앞것’으로 부르며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을 자청한 그다.
탁월한 재능을 바탕으로 한국 대중문화계에 크고 작은 궤적을 그렸음에도 일평생을 소박한 삶을 추구했던 대중문화계의 거장은,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이의 슬픔을 품고 천안공원묘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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