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이진원 객원기자] 미국의 기술주가 인공지능(AI),관련주를 중심으로 최근 며칠 사이 뚜렷한 약세 흐름을 보이자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AI 거품이 마침내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술 투자자들이 빅테크 기업과 주식 시장 투자자와 벤처캐피털들이 AI 분야에 쏟아붓고 있는 천문학적 자금이 금융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월가 전문가들과 기술 투자자들 사이에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기술기업들이 수천억 달러나 되는 돈을 AI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데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3일(현지시간) 구글의 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애널리스트들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에게 분기당 120억달러(약 16.6조원)에 달하는 구글의 AI 투자가 언제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피차이는 “AI 제품이 성숙하고 더 유용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다만 AI에 드는 높은 투자 비용을 인정하면서도 AI 붐이 둔화하더라도 회사가 구매하고 있는 데이터 센터와 컴퓨터 칩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심하기 시작하는 전문가들
마찬가지로 지난 몇 주 사이 골드만삭스와 바클레이즈 등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과 세쿼이아 캐피털 같은 벤처캐피털은 AI 골드러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이 기술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주식 애널리스트이자 30년 동안 기술 기업을 취재한 베테랑인 짐 코벨로는 최근 AI 관련 보고서에서 “비용 지출 부담이 큰데도 불구하고 AI 기술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면서 “세상에 쓸모가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과도하게 구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4월 골드만삭스가 생성형 AI 혁신이 글로벌 경제에 전면적인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며, AI가 전 세계 3억 개의 일자리를 자동화하고 향후 10년 동안 글로벌 GDP를 7% 성장시킬 수 있다고 낙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불과 1년여 만에 AI의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확신’에서 ‘의심’으로 바뀐 것이다.
바클레이즈는 한술 더 떠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빅테크 기업들이 2026년까지 AI 모델 개발에 연간 약 600억달러(약 83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시점까지 AI를 통한 수익은 연간 약 200억달러(약 27.7조원)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서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세쿼이아 캐피털의 파트너인 데이비드 칸은 지난달 블로그 게시물에서 빅테크를 포함한 기술업계가 현재 AI에 투자한 모든 자금을 만회하려면 연간 약 600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해야 하지만 그 수치에 훨씬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세쿼이아 캐피털 역시 골드만처럼 AI 붐이 불기 시작했을 때부터 AI에 대해 낙관했었지만 이제 입장을 바꿔 이처럼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칸은 지난해 9월에만 해도 기술업계가 AI에 투자한 돈을 만회하려면 200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추정했는데, 추정액을 3배 올려잡았다. 이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기술업계가 AI에 그만큼 더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AI 광풍
2022년 11월 오픈AI가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성형 AI’인 챗GPT를 내놓으면서 AI 광풍이 불자 빅테크 기업들은 지금까지 AI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개인 투자자들은 AI 관련 기업과 공급업체 주식 매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특히 생성형 AI 모델을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성능 GPU(Graphics Processing Unit)을 만들어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 엔비디아의 주가는 폭등했다.
최근 일주일 사이 주춤하고 있다고 하나 AI 분야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의 25일(현지시간)까지 수익률은 각각 21.1%와 12.8%에 이른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약 133%가 오른 상태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도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수천 개의 AI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 즉 수조 원을 쏟아부었다.
기업들은 투자금을 얻기 위해 AI 분야에 진출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파크웨이 벤처스의 매니징 파트너인 그렉 힐은 올해 초 “대부분의 기업이 벤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AI가 자사의 핵심 사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AI 사업 진출을 홍보 있다”고 지적했다.
벤처캐피털 데이터 회사인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벤처 투자자들이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556억달러(약 77조원)로, 이는 2년 만에 단일 분기 기준 최고치이다.
이처럼 AI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술 기업들은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그랬듯이 AI가 현대 생활의 모든 부분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AI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이미 문서를 번역하고, 이메일을 작성하고, 프로그래머의 코딩을 돕는 데 사용되고 있으나 작년에만 해도 붐을 예고했던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 기술업계가 AI에 투자한 돈을 조만간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들은 하지만 “월가가 AI 투자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나온 지 2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소비자와 엔터프라이즈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챗GPT와 (AI 기반 코딩 도우미인) 깃허브 코파일럿에 대해 월가는 점점 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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