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아 EV3 시승기
가격+주행거리 다 잡은 만능 전기차
덩치만 보고 무시하기 어려운 똑똑함
전기차가 안 팔리면 제조사는 내연기관차를 더 개발해야할까? 수익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기아는 ‘안 사는 이유’를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어야 한다면, 전기차에 대한 고민과 우려를 직접 없애고 선봉에 서기로 한 것이다.
기아가 EV3를 개발하며 내세운건 다름아닌 ‘전기차의 대중화’. 이를 위해 가장 큰 불안요소인 주행거리와 가격을 해결했다는 게 기아가 내세우는 최대 강점이다. 기아는 과연 EV3로 주춤한 전기차 시장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시승해봤다. 시승모델은 더 기아 EV3 어스트림 롱레인지 모델, 19인치 휠·빌트인캠2 등 7가지 선택사양을 포함해 가격은 세제혜택 후 4458만원이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갤러리아포레에서부터 강원도 속초시 롯데리조트까지 약 200km를 달려봤다.
앙증맞은 몸매에 다부진 얼굴. 소형 전기 SUV(스포츠 유틸리티차량)라기에 만만하게 생각했건만, 처음 마주한 인상은 마냥 귀엽게 생각하긴 어려웠다. 작은 차는 귀엽고 다가가기 쉬운 인상이라는 편견을 깨는 얼굴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전반적으로 쭉쭉 뻗은 날카로운 선 때문이었다. 대형 플래그십 모델인 EV9에 이어 EV3의 헤드램프에도 기아의 패밀리룩인 ㄱ자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이 적용됐는데, 거칠게 뻗은 선이 작은 몸집에 들어가니 더 강인한 얼굴이 완성됐다. EV9에서는 큰 덩치에 딱 알맞는 느낌이었다면, EV3에서는 헤드램프가 얼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게 느껴진다.
EV9의 이미지는 후면으로 돌아서면 더 짙어진다. 중앙에 기아 엠블럼만 박아놓은 채 여백을 강조한 디자인과 양쪽에 사마귀 다리처럼 꺾여지는 리어램프 모양이 그렇다. 물론 EV9은 이 사마귀 다리 위에 선이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축소판 EV9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은 숨길 수 없다.
이 가격에 1억에 육박하는 플래그십 감성까지 낼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 물론 EV9 오너는 EV3로 오해받을까 노심초사할 수도 있겠다.
내부로 들어서자 외관에서 느꼈던 플래그십의 향기가 실망감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보조금을 적용받으면 3000만원대 후반에 살 수 있는 전기차, 게다가 크기는 내연기관으로 따지자면 니로와 셀토스 급이다. 그런데 니로, 셀토스 오너들이 서운할 정도로 잘 갖춰진 모습이었다.
우선 널찍한 디스플레이가 EV9에서 본 그대로다. 운전석부터 중앙 디스플레이까지 끊기지않고 길게 이어진 모양인데, 기존 운전석과 중앙 디스플레이가 따로 표시되면서 중간에 끊어졌던 부분에 공조 디스플레이가 하나 더 들어갔다. EV9에 최초로 탑재됐던 디스플레이가 그대로 들어간 것이다.
내연기관 차에서 항상 고집하던 터치 변환식 공조 조작도 이번에는 전부 다 물리 버튼으로 바뀌었다. 중요한 기능은 물리버튼을 탑재하는 현대차와 비슷해지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터치 변환식 공조조작이 탑재된 니로를 몰고 있는 오너로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대시보드는 패브릭으로 처리됐다. 친환경 소재를 적용한 플라스틱보다 훨씬 더 고급진 느낌을 준다. 음료가 튈까 걱정은 될 듯 하지만,보기에는 훨씬 좋다. 이런 부분에서 ‘저가 전기차’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신경 쓴 티가 팍팍 난다.
현대차, 기아의 모든 차량을 통틀어서 처음 들어간 요소도 있다. 센터콘솔에 위치한 수동 테이블이다. 말 그대로 센터콘솔 앞부분을 손으로 잡아당기면 테이블처럼 쭉 늘어나는데, 휴게소에서 잠깐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을 때 굉장히 편리하게 느껴졌다. 전기차 특성상 최소 30분 이상 충전할 필요가 있는 만큼, 차 안에서 업무를 볼 때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 테이블이 생기면서 불편해진 점도 있다. 컵 홀더가 센터 콘솔 아래로 위치하면서 손을 많이 뻗어야 음료수를 잡을 수 있다. 팔이 짧을 수록 상체를 숙여야하고, 초보 운전자는 음료를 마실 엄두를 못낼 수 있다.
암레스트에 위치한 수납함도 없어졌다. 콘솔 하단에 넓은 공간을 배치하긴 했지만, 오픈된 공간이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몰래 넣고 싶은 소품들을 넣을 공간이 없어졌다. 작은 테이블을 얻은 대가다.
현대차·기아 최초로 탑재된 ‘생성형 AI’는 매우 반갑다. 보통 이런 기능은 플래그십 모델에서 탑재되고, 나중에서야 컴팩트 모델에 들어가는데, 기아가 EV3에 얼마나 힘을 줬는 지 알 수 있다. 그간 음성 인식으로 목적지 설정과 일부 기능을 켜고 끄는 정도에 그쳤지만, 생성형 AI는 더 넓은 범위의 대화가 가능하다.
생성형 AI를 작동시키려면 설정에 들어가 호출어를 사용하도록 설정하고, 그 이후로는 허공에 대고 ‘헤이 기아’를 외치기만 하면 된다. 헤이 기아는 생각보다 더 똑똑한데, 차량 기능을 켜고 끄는 것은 당연하고, 맛집이나 음악 검색도 알아서 해준다. 예를 들어 ‘속초 닭강정을 추천해줘’라고 하면 닭강정집이 쭉 뜬다. 유명 닭강정집이 어떤지묻자 ‘OO 닭강정은 바삭하고 촉촉한 맛으로 인기가 많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똑똑한 EV3의 달리기 실력은 어떨까. 가속페달을 밟자, EV3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고 튀어나갔다. 엔진이 없으니 모든 전기차가 갖고있는 당연한 특성이지만,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소형 SUV’ 라는 이유에서다.
초반 가속시나 경사진 오르막을 오를 때, 120km 이상의 고속에서 매번 아쉬움을 느꼈던 소형 하이브리드 SUV 오너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주행감이었다. EV3는 조용히, 덤덤하게,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경쾌하게 튀어나가고, 부드럽게 감속한다. EV3에서는 울어대는 차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같은 크기에 다른 주행감을 느끼고 나니 전기차의 장점을 크게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회생제동 강도를 운전 중 즉각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매우 편리하다. 스티어링 휠 뒷편, 패들쉬프트로 더 익숙한 레버가 EV3에서는 회생제동 강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담고 있다. 기존엔 디스플레이 속 설정에 들어가 회생제동 강도를 설정해야 했지만, EV3에서는 언제든지 운전 중 빠르게 회생제동을 변경할 수 있다.
이 기능이 고마운건 회생제동 강도를 강하게 할 수록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속도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완벽한 원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멀미를 유발하는 승차감을 개선시키고, 속도를 줄이는 것 뿐 아니라 감속까지 가능한 ‘아이페달 3.0’ 기능까지 적용되면서 승차감과 편의성까지 두루 챙겼다.
출발 전 430km였던 주행가능거리는 속초에 도착했을때 270km 가량 남아있었다. 속초까지 가는 거리보다 훨씬 더 적게 전기를 쓴 셈이다. 롱레인지 모델은 최대 주행거리가 501km인 만큼, 부산까지 가더라도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충전할 필요가 없다.
시승을 마치고 나니 소형~준중형 SUV를 고려할 때 기아 EV3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트림과 옵션에 따라 보조금을 최대로 적용받으면 3000만원 중후반대에 구매할 수 있고, 기아가 칼을 갈고 만들어준 덕분에 ‘소형’이라 포기해야했던 각종 기능과 세련된 감성까지 챙길 수 있다. 큰 차는 필요하지 않고, 작은 차는 엔진이나 인테리어, 옵션이 매번 아쉬웠다면 EV3를 시승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타깃
-3000만원 후반~4천만원 초반에 만끽하는 EV9 감성
-주행거리, 가격만 해결되면 산다고 했던 분들, 계약하세요
▲주의할 점
-고급 트림에 옵션 좀 넣으면… 테슬라 모델 3와 겹치는 가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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