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지역에서 가격 상승 기대감으로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송파구 잠실동, 성동구 성수동, 양천구 목동 등은 지난해보다 거래량이 오히려 더 늘기도 했다. 서울뿐 아니라 선도지구 지정으로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진 1기 신도시에서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지만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어 토허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토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한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과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지역에서 신고가가 잇따르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전용 161㎡는 지난 5일 최고가인 54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약 1년 전 실거래가인 50억3000만원(2023년 8월)보다 4억원 이상 올랐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114㎡는 지난달 28일 49억2000만원에 신고가를 찍었다.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은 전용 178㎡가 이달 12일 49억원에 신고가를 경신했다. 1년 전 거래가(43억2000만원)보다 6억원 가까이 올랐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일대는 최근 거래 대부분이 신고가 릴레이 수준이다. 구현대6,7차는 대부분 면적대에서 최근 신고가가 이어지고 있다. 전용 144㎡는 지난 3일 54억80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고, 같은 단지 전용 157㎡는 지난 20일 64억원에 신고가를, 전용 245㎡는 지난달 14일 115억원에 신고가를 기록했다. 압구정 한양8차는 전용 210㎡가 지난달 3일 신고가 83억5000만원을 기록, 직전 거래(2021년 9월) 이후 3년 만에 11억원 이상 올랐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5단지 전용 95㎡는 이달 18일 신고가인 23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전용 154㎡는 이달 24일 신고가 33억원을 기록하며 2년 전보다 5억원 이상 올랐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부아파트는 전용 92㎡가 이달 12일 23억4500만원에 신고가를 다시 썼다.
토허제 지역의 집값이 불붙으며 거래량도 늘어났다.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토지거래허가내역에 해당하는 양천구 목동은 올해 들어 1월부터 6월 말까지 토지거래허가 건이 592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502건보다 17.9% 늘었다. 성동구 성수동은 거래량 자체는 적지만 23건에서 41건으로 78% 늘었다.
마찬가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송파구 잠실·신천동 일부는 447건 거래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13건보다 8.23% 늘어난 수준이다. 올 들어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구 압구정·삼성·대치·청담동, 송파구 잠실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양천구 목동, 성동구 성수동 내 토지거래허가 건수는 이날(25일) 기준 총 1551건으로 집계돼 지난해와 비슷했다. 하지만 아직 거래 내역이 모두 반영되지 않은 시점임을 고려하면 작년보다 허가 건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 여의도 공인중개사는 “아직 토지거래허가 집계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이달 들어 재건축 단지들 거래가 좀 더 활발해진 것을 느낀다”며 “토허제로 묶인 점은 아쉽지만 신고가 거래가 계속 나오고 있어 기대된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상가·토지 등을 거래하려면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다. 허가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토지가격의 30% 상당 금액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특히 주거용 토지의 경우 2년 간 실거주용으로만 이용해야 하며, 2년간 매매·임대도 금지된다. 당초 토허제는 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 예정 지역에서 투기가 성행하거나 땅값이 폭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은 ‘나라에서 찍어준 투자처’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압구정동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토허제 등 정부가 규제지역으로 정한 곳이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정부가 투기 수요와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지정한 곳인 만큼 투자 가치가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유주들은 토허제가 아파트 가격 상승 여력을 낮춘다며 불만이 높다. 지난 3일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용 79㎡는 19억5000만원에 매매되며 가격이 보합세에 머물렀다. 한 여의도 단지 소유주는 “토허제만 없었어도 지금 가격에서 3억~4억은 더 올랐을 텐데 상승 폭이 타 지역보다 크지 못해 아쉽다”며 “압구정 등 강남에서 가격이 쭉쭉 오르는 걸 보면 토허제가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지역의 경우 정비사업 기대감 등으로 단기간 집값이 급등한 점을 고려해 2021년 4월부터, 삼성·청담·대치·잠실 지역은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 기대감에 따른 투기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2020년 6월23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왔다. 허가구역은 한 번에 최장 5년 이내로 횟수 제한 없이 지정할 수 있는데 서울시는 1년마다 한 번씩 재지정 여부를 결정해왔다.
이후 1~2년 전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이 하락하며 토허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으나, 서울시는 지난 6월 강남·송파구 국제교류복합지구에 해당하는 ‘잠삼대청'(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 일대 총 14.4㎢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1년 재지정, 내년 6월 22일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 주요 재건축단지 총 4.57㎢ 구역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한을 내년 4월 26일까지로 1년 더 연장했다. 대상 지역은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지구 24개 단지 △영등포구 여의도동 아파트지구와 인근 16개 단지 △양천구 목동 택지개발지구 14개 단지 △성동구 성수동 전략정비구역 1~4구역이다.
시가 올해도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지 않은 건 최근 강남3구를 중심으로 가격 회복세를 보이고, 서울 전역 아파트 매매가격이 상승 전환하는 등 토허제를 풀 경우 집값이 급등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도 올해 초 “집값은 더 내려가야 하며,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서울시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연내 재지정 연장 여부를 재검토할 계획이며, 지정 전후 지가 안정 효과 등 실효성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도 밝혔다.
선도지구 지정 기대감이 높은 1기 신도시에서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지역 위주로 상승세가 뜨거운 분위기다. 특히 서울에서 토허제는 실거주해야만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1기 신도시에서는 주거용을 제외한 상가, 오피스텔을 사고팔 때만 지자체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 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예비 선도지역’으로 분류되는 고양시 일산동구 일원 4.48㎢, 성남시 분당구 일원 6.45㎢, 안양시 동안구 일원 2.11㎢, 군포시 산본동 일원 2.03㎢, 부천시 원미구 일원 2.21㎢ 등이다. 해당 지역은 오는 12월 31일까지 토허제로 우선 묶였고, 시장 상황에 따라 연장 여부가 재검토될 예정이다. 이달 초 정부는 오는 11월 선도지구 지정을 앞두고 아파트 거래량이 급증하며 정부가 ‘상가쪼개기’를 우려해 이들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업계에서는 1기 신도시가 토허제로 지정되며 거래 문의가 더 늘고 있다는 분위기다. 특히 재건축 사업성이 높은 편인 분당 일대는 신고가 거래도 나온다. 국토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시범삼성’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6억원에 손바뀜했다. 서현동 삼성,한신 전용 133는 이달 4일 신고가 21억에 매매됐다. 분당구 금곡동 유천화인은 전용면적 84㎡ 기준 지난달 7억 60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분당의 한 공인중개사는 “토허제로 묶이면서 선도지구 재건축 기대감이 더 높아져 가격도 오르는 추세”라며 “선도지구 기준 발표 이후 거래가 늘고 가격이 올랐는데 토허제로 지정되면서 문의가 더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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