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경영 10년’ 뚜렷한 비전 부재··· 과감한 JY식 결단이 필요하다
②비전 부재 후폭풍··· 흔들리는 삼성 ‘초격차’
③커지는 노조 리스크, 강성노조 제 살 갉아먹기 경계
④쌓이는 유보금··· 사라진 대규모 인수합병
⑤글로벌 네트워크 광폭 행보, 빅테크로 도약 원동력 삼아야
잘하는 사업에 집중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 간 비즈니스 동맹이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부터 직접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 확대를 챙기고 있다. 반도체·스마트폰·TV 등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이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빅테크와 협력이 필수인 만큼 이재용 회장의 광폭 행보와 이에 따른 성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이 삼성그룹 총수로 취임한 후 가장 신경쓴 부분이 글로벌 네트워크(인맥)를 확대함으로써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이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부터 삼성그룹 총수로서 전 세계 각국 수반과 엔비디아·메타·아마존·퀄컴 등 빅테크 최고경영진을 잇달아 만나며 삼성과 파트너십 확대를 논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약 2주에 걸친 장기 미국 출장이다.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끝난 후 출국한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 미래 사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미국 주요 IT, 인공지능(AI), 반도체, 통신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 및 정관계 인사들과 릴레이 미팅을 이어갔다.
출장 기간 이재용 회장은 뉴욕, 워싱턴DC 등 미국 동부뿐만 아니라 서부 실리콘밸리까지 광폭행보를 이어가며 삼성전자 주요 고객사와 협력 강화 및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고심했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매일 분 단위까지 나눠지는 빽빽한 일정 30여 건을 모두 차질 없이 소화했다. 삼성그룹 미래에 관한 이재용 회장의 고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재용 회장은 우선 지난달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베리 회장 겸 CEO를 만나 5.5G 등 차세대 통신망 구축과 신형 갤럭시 스마트폰 판매 확대를 위한 양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용 회장과 베스트베리 회장은 지난 2010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0 행사에 각각 삼성전자 부사장과 에릭슨 회장 자격으로 나란히 참석한 것을 계기로 10년 이상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두 회장의 공통된 관심사는 인공지능(AI)과 이를 활용한 고객 경험(UX) 혁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갤럭시에 탑재된 온 디바이스 AI ‘갤럭시 AI’가 약 1억4000만명에 달하는 버라이즌 가입자에게 어떤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집중 논의했다. 구체적으로 갤럭시 신제품 관련 공동 프로모션과 버라이즌 오프라인 매장에서 갤럭시 신모델의 AI 기능을 체험하도록 하는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두 회장 간 만남 자리에는 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사업부장과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등 삼성전자 주요 임원도 함께했다.
미팅이 끝난 후 이재용 회장은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 해내고, 아무도 못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야 한다”고 말하며 삼성전자가 모바일·네트워크 분야 선도 기업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미국 동부 일정을 마친 이재용 회장은 서부 실리콘밸리로 이동해 글로벌 IT 산업을 주도하는 메타, 아마존, 퀄컴 등 빅테크 CEO와 회동했다. 세 회사는 삼성전자 D램, 낸드 플래시,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고객이자, 스마트폰·TV 사업의 파트너다.
지난달 11일에는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자택에 방문해 단독 미팅을 진행했다. 저커버그 CEO가 이재용 회장을 자택에 초청한 것은 지난 2월 방한 당시 이재용 회장이 삼성 영빈관 ‘승지원’에 초대해 극진히 대접한 것에 따른 감사 표현이다.
이재용 회장은 2011년 이후 저커버그 CEO와 총 8번의 미팅을 가질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재용 회장과 저커버그 CEO는 AI와 가상·증강현실 등 메타의 미래 사업과 삼성전자 사업의 연계·협력 방안에 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달 12일에는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본사를 찾아 앤디 제시 아마존 CEO와 미팅을 했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사업자인 아마존은 차세대 메모리를 포함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핵심 비즈니스 파트너다. 이 자리에는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부문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등이 함께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삼성전자 MX사업부 및 DS부문과 연관이 깊은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를 만나 AI칩과 차세대 통신모뎀 등 미래 반도체 시장에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비록 지난달 미국 출장에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재용 회장은 엔비디아와 긴밀한 파트너십 구축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출장에서 젠슨 황 CEO를 만나 양사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에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출장을 마친 후 이재용 회장은 “삼성의 강점을 살려 삼성답게 미래를 개척하자”고 강조했다. 재계에선 이재용 회장이 이번 미국 출장을 통해 생성 AI 등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등장으로 매년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바뀔 정도로 격화하는 ‘기술 초경쟁’ 시대 속에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위상과 미래 기술 경쟁력을 점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뿐만 아니라 인도 등 신흥 시장 개척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13일 인도 뭄바이 지오월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의 막내아들인 아난트 암바니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어 현지 IT·가전 시장 상황을 살펴본 후 삼성전자 인도법인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격려했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그룹의 오너인 암바니 회장은 순자산 1160억 달러(약 160조원)로 포브스 기준 인도 1위, 전 세계 9위 부호로 평가받고 있다. 릴라이언스그룹 산하 ‘릴라이언스 지오’는 인도 1위 이동통신사(점유율 약 50%)로,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장비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클린 텔코(반 중국 이동통신사)’ 구성원으로서 전국 LTE 망에 100% 삼성 네트워크 장비를 쓰는 등 삼성전자와 전략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이 회장이 릴라이언스그룹과 관계 강화를 직접 챙기는 이유는 삼성전자의 지속 성장을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 시장 공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도법인 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치열한 승부근성과 절박함으로 역사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은 재계 리더로서 전 세계 정치권 주요 인사를 예방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 리창 중국 총리, 팜민찐 베트남 총리 등과 잇달아 회동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한·일·중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리창 총리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삼성전자와 별도 면담을 가지며 삼성전자와 돈독한 관계를 드러냈다. 리창 총리는 지난 2005년 시진핑 당시 저장성 서기가 방한했을 때 비서장 직책으로 삼성 수원·기흥 사업장을 방문한 바 있으며, 이번에 19년 만에 이재용 회장과 한국에서 만났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기간에 삼성전자 중국 출장 직원을 위한 전세기 운항 허가와 시안 봉쇄 기간 중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생산 중단 방지 조치를 하는 등 삼성전자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