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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일연스님 …가파른 절벽 위에 뿔을 걸고 숨은 산양처럼 은둔하다

아주경제 조회수  

원철 스님
[원철 스님]

지역마다 자기고장의 특색을 살리는 명칭으로 동네이름까지 바꾸는 일이 더러 있다. 군위의 ‘삼국유사면’도 그러한 경우라고 하겠다. 《삼국유사》는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목록에 등재된 명저이다.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가 위치한 지역의 행정구역명은 본래 경북 군위군 고로면이었다. 돌에 새겨진 ‘고로우체국’ 검은 글씨 뒤로 새로 지은 이층짜리 전형적인 시골 우체국 건물에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삼국유사 우체국’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인근 고속도로에도 ‘삼국유사 군위휴게소’가 있다. 모두가 지역사회의 가장 유명한 문화유산인 《삼국유사》를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夏至)가 막 지나간 뜨거운 여름 날 인각사(麟角寺)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 병풍처럼 우뚝 솟은 절벽 아래로 위천(渭川)이 반달모양을 그리며 휘감아 흐르는 평지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인각 즉 ‘기린 뿔’이란 절 이름이 특이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는 기린은 뿔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린은 용의 머리에 사슴의 몸과 뿔 그리고 소의 꼬리에 말의 발굽과 갈기를 가진 상서러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일본 기린맥주 상표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신편동국여지승람》에는 “동구(洞口 입구)에 석벽(石壁 깍아지른 바위)이 촉립(矗立 우뚝 서 있음)해 있는데, 옛날부터 전하기를 기린이 그 위에 뿔을 걸어 두었으므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바위 위에 뿔을 걸어둔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당나라 운거도응(雲居道應 ?~902. 조동종)선사의 선문답인 ‘영양괘각(羚羊掛角)’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겠다. 영양은 뿔을 나무에 거는 방법을 사용하여 몸을 숨기면서 발 자취를 없앤다. 영양은 산양(山羊)의 일종이다. 사냥개가 발자국을 따라 사냥꾼을 안내하지만 영양은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서 몸을 공중에 띄운 채 숨어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이를 선불교에서는 몰종적(沒蹤跡)이라 한다. 허공을 나는 새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일연선사도 임종할 무렵 “뿔을 세 개 가진 기린이 바다에 들어가고…”라는 말씀을 남겼다. 기린이 바위 사이에 뿔을 걸고서 숨는 것처럼 일연선사는 만년에 이 곳에서 흔적없이 은둔코자 했으며 마지막에는 흔적없이 종적을 감추는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인각사에는 일연(一然 1206~1289)선사의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다. 절 밖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것을 제대로 관리하고자 1962년 인각사 경내로 옮겼다. 비교적 온전한 부도와는 달리 비석은 갈라지고 넘어져 거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도괴된 채 비각 안에 서 있다. 그럼에도 최고급 비석재료인 귀한 검은 오석(烏石)이 뿜어내는 품위와 몇 자 남지 않았지만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 303~361)서체의 명품인지라 ‘오리지널’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은 여전하다. 원본비석은 구산선문 문도들의 정성과 역량을 총결집하여 1295년(국사열반 6년 후) 세웠다. 글은 정치외교가인 민지(閔漬 1248~1326)에게 부탁했다. 그는 당시 장원급제한 인물이라는 유명세를 자랑했다. 또 죽허(竹虛)스님은 4천자나 되는 왕희지체 글자를 모으기 위해 집자(集字)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려최고의 비석을 만들겠다고 모두가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일연공원 입구
[일연공원 입구]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나타난 결과는 정반대였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불교계는 위축되었고 시설관리 능력마저 저하되면서 너도 나도 왕희지 명필 비문을 탁본하겠다고 몰려든 것이다. 지나친 탁본은 비석보존에 치명상이다. 개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 명나라와 일본의 탁본요청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비석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마시면 과거에 급제한다거나 혹은 비석을 세 번 돌고나서 손으로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앙심까지 가세했다. 또 좋은 재료로 벼루를 만들겠다고 시골선비들이 오석을 잘라가는 일까지 겹쳤다. 게다가 위치도 경내가 아닌 동남쪽 방향으로 4~5리 떨어진 곳에 외따로 있는지라 관리의 손길마저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훼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비록 원본비석은 도괴되었으나 탁본 수십여점이 개인소장품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인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그리고 미국 버클리대학 동아시아 도서관 또 일본 천리대 등에도 탁본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출신의 재야 서지학자 박영돈 선생 덕분에 빠진 글자를 탁본끼리 서로 대조해가며 짜맞춘 결과 거의 원본에 가깝도록 복원할 수 있었다. 명필의 글씨가 화(禍)가 된 동시에 복(福)이 되는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희귀한 사례라고 하겠다. 비석은 국사탄생 800주년기념사업으로 2006년 경내에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도괴된 비석
[도괴된 비석]

일연선사는 1283년 국사(國師)자리를 사직하고 개경에서 인각사로 내려왔다. 이유는 95세인 모친을 봉양하기 위함이다. 이듬해 모친이 돌아가셨으니 함께 산 것은 반년 남짓하다. 스스로 호를 목암(睦庵)이라 했다. 당나라 목주(睦州 절강성)출신인 도명(道明)선사의 효행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목주도명은 만년에 큰절의 어른인 방장자리를 버리고 홀로 시골 암자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짚신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한 연유로 진포혜(陳蒲鞋)라는 별명이 붙었다. 진씨 성을 가진 짚신스님이란 뜻이다.
 
일연스님의 생전효도는 6개월 정도에 불과했지만 사후 효도는 영원히 이어졌다. 열반할 때 제자들에게 부도를 세울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절 동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곳이였다. 알고보니 정면 산 위에 있는 어머니 산소가 보이는 자리였다. 아침에 비친 햇볕이 부도에 반사되면서 어머니의 무덤을 비추었다. 밤이 되면 사찰 석등에 불을 밝히면 그 불빛이 당신의 부도까지 닿았다. 부도의 불빛이 다시 어머니 무덤을 비추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동네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복원한 비석
[복원한 비석]

현재 지역주민의 일연스님 사랑은 끝이 없다. 옮겨버린 원래 부도자리 빈터에는 역사성을 살려 다시 새로 만든 부도를 안치했다. 어머니 산소 앞에는 1997년 ‘낙랑군부인이씨지묘(樂浪君夫人李氏之墓)’ 글자를 새긴 상석을 마련했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옛이야기를 구체적 형상으로 다시 살려낸 것이다. 2017년 모친무덤과 아들의 원래 부도터를 잇는 길이 포함된 ‘일연 테마로드’ 라는 순례길을 만들었다. 효도길 끝자락에는 ‘일연공원’까지 조성하여 삼국유사 편찬이라는 기념비적 업적을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토록 했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아주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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