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홍유진 이기범 이강 기자 = 경찰 서열 네 번째 계급 간부인 조병노 경무관과 그의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백해룡 경정이 차기 경찰청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나란히 채택되면서 ‘마약 세관 연루 사건’이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다국적 마약 조직원들이 인천공항으로 필로폰을 대량 밀반입하는 과정에서 세관 직원들이 통관절차를 눈감아줬다는 의혹이다.
조 경무관은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던 지난해 10월 공식 지휘계통이 아닌데도 일선서 사건 책임자인 백 경정에게 전화해 ‘관세청 관련 문구 삭제’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경찰이 이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실제로 관련 내용이 빠져 논란이 불거졌고,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현 서울경찰청장)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의혹이 다시 증폭된 상태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수사 외압 의혹
25일 취재를 종합하면 조 경무관과 백 경정은 오는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선다. 조 경무관은 현재 수원 남부경찰서장, 백 경정은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이다. 수사 외압 의혹은 조 경무관이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고 백 경정이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던 지난해 10월 확산했다.
조 경무관은 당시 언론 브리핑을 준비 중이던 백 경정에게 “세관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 “국정감사 때 야당 좋은 도와줄 일 있나”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조 경무관이 지휘하던 ‘생활안전과’는 해당 사건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 경무관이 본인의 지휘 사건이 아닌데도 두 계급이나 아래인 일선서 경정에게 연락해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 논란이 컸다. 경찰 내부에서는 “의혹의 사실관계를 떠나 조 경무관이 전화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희근 현 경찰청장도 조 경무관의 행동에 격노하면서 경찰청은 조 경무관에게 감봉 등 징계를 내려달라고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 요청했다. 인사혁신처는 ‘불문’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불문’은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 제2조제3항에 따라 징계위원회에서 징계의결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사 외압 의혹은 윤 청장이 지난 4일 직권으로 조 경무관을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백 경정이 최근 화곡지구대장으로 이동하는 좌천성 인사 발령이 난 데다 공보 규칙 위반 등을 이유로 조 후보자의 경고 조치를 받으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백 경정은 지난 2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석해 외압 의혹과 관련한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그가 조 경무관과 고광효 관세청장,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사건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지난 16일 공수처에 고발한 데 따른 조사였다.
백 경정은 10시간 이상 조사받고 자정 넘어 청사 밖으로 나온 뒤 “(공수처에) 고발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고민을 했고, 공수처까지 오게 된 시간과 길이 상당히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며 “고발된 내용이 잘 정리돼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취재진에 심경을 밝히는 과정에서 백 경정은 약 18초간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 측은 ‘외압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의 질의에 “인천공항세관장으로부터 브리핑 내용 중 세관 직원 언급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협조 요청 전화를 받고 짧게 통화한 것”이라며 “브리핑 도중 기자가 질의할 경우 언급할 수도 있다고 백 과장이 상세히 설명해 줬다”고 말했다.
◇’관세청 관련 내용’ 보도자료에서 왜 뺐나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은 언론 보도자료에서 왜 ‘관세청 관련 내용’이 빠졌냐는 것이다. 일선 경찰서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 간부들과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이 언론 브리핑을 닷새 앞두고 회의하다가 해당 내용을 담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백 경정은 ‘관세청 관련 내용’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사실상 서울경찰청 간부의 요구로 삭제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목할 점은 서울청 간부와 영등포서 수사팀의 회의 날과 조 경무관이 백 경정에게 전화해 ‘관세청 관련 삭제’를 요청한 날이 2023년 10월 5일로 같다는 점이다. 회의는 오전에 열렸고, 조 경무관은 오후 5시쯤 백 경정에게 전화했다. 백 경정 입장에서는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의 담당 부서 간부는 물론 다른 부서 간부(조 경무관)까지 삭제를 요청하니 ‘외압’으로 느껴지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는 시각이 많다.
영등포경찰서로부터 세관 마약 사건을 보고받는 당시 서울경찰청 지휘라인 중에는 현 정부 출범 후 약진해 지난달 주요 시도경찰청 청장으로 발령난 A 치안정감도 포함돼 있다.
A 치안정감은 과의 통화에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건인 만큼 어디에서 수사할지 논의했을 뿐이고 보도자료에 무엇을 넣고 빼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며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도 “실무적 논의를 거쳐 보도자료에서 세관 관련 내용이 빠지게 된 것”이라며 “우려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신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보도자료에서든 브리핑에서든 다른 기관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실관계가 확실히 정리된 후 다른 기관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찰 한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세관 직원들의 연루 의혹과 관련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 혹은 정황이 없었다면 자료에서 빼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조 경무관이 백 경정에게 전화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사건 이첩’ 논의 시기와 겹치면서 오해를 살 만했다는 견해도 있다. 사건이 영등포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로 이첩하는 것이 내부적으로 검토됐다는 것이다. 백 경정의 강한 수사 의지로 영등포에서 사건을 계속 수사했으나 이첩 논의 과정에서 수사가 열흘 가까이 중단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외압 의혹이 일었던 지난해 10월 이후 9개월가량 지났는데도 세관 직원의 송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아 의혹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가 사실상 답보 상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피의자로 입건된 세관 직원은 7명이다. 경찰은 이들의 혐의와 관련한 증거를 확보하고자 인천세관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 신청했으나 서울 남부지검은 모두 반려했다.
이에 백 경정은 남부지검 검사의 직무 배제 및 회피를 요청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부와 논의를 거치지 않아 경찰 내부에서 ‘보고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이 백 경정을 지구대장으로 발령낸 것도 이 같은 논란을 고려한 조처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부지검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백 경정의 검사 직무 배제 및 회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호 후보자 어떤 입장 낼까
조지호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마약 세관 사건’이 촉발한 각종 의혹이 해소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어떤 사안이든 비교적 직설 화법으로 대응하는 조 후보자가 수사 외압 의혹에 어떤 입장을 낼지도 관심사다. 경찰 관계자는 “조 경무관과 백 경정 모두 증인으로 채택된 만큼 후보자에게 외압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의가 있을 것이고, 조 후보자 측도 입장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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