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이후 15년 만
가계 빚 규제에 활로 모색
치솟은 연체율 관리 ‘숙제’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내준 대출 금리가 대기업을 밑도는 역전 현상이 넉 달째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을 더 우대하고 있다는 얘기로, 이같은 사례를 찾기 위해서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이례적인 현상이다.
정부가 가계 빚의 고삐를 죄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은행들이 기업대출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금리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5월 신규취급액 기준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평균 4.85%로, 대기업(4.99%)보다 0.14%포인트 낮았다.
이같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대출 금리 역전은 올해 2월부터 지속되고 있다. 2009년 7월 이후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보통은 중소기업보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통상 은행들이 상환능력 등 리스크를 감안해 금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 배정을 받기 위해 2월부터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며, 일시적인 효과라고 입을 모은다.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은행들이 취약 중소기업에 대출할 수 있도록 한은이 저금리 자금을 은행에 지원하는 제도다. 한은은 올해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액 30조원 중 9조원을 중소기업 특별 지원 대출에 사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자금을 받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 경쟁에 나섰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대출 상품도 늘고 운영하다보니 기업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정책과 별개로 은행들이 기업대출 확보에 집중했던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과 이자장사 비판을 받으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격적으로 기업대출을 확대해 왔던 터였다.
그 결과 은행권 기업대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49조1000억원이 증가하며 가계대출 증가량(20조5000억원)의 두 배 넘게 늘었다.
기업대출 중에서는 중소기업 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달 말 잔액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028조2000억원(중소법인 574조2000억원, 개인사업자 454조1000억원)으로 대기업 대출 잔액(268조6000억원) 금액을 훨씬 웃돌았다.
일부 은행에서 공격적인 기업대출 영업에 나서자 다른 은행들도 금리를 낮추는 등 적극적인 경쟁에 뛰어든 결과물이다. 금융권에선 기업대출 경쟁은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기업대출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4월 본부 차원에서 우량기업고객을 대상으로 대폭 할인된 금리를 내줄 수 있는 총 14조원 한도의 본부 특별금리승인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방면으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반면 하나은행의 경우 수익성이 낮은 기업대출 자산을 확대하지 않기로 하는 등 건전성 관리에 돌입했다. 신한은행도 수익성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기업대출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이런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는 와중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월 말 중소기업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6%로 진난해 12월 말 0.48%에 비해 0.12%p 상승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연체율은 0.12%로 변동이 없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연체율 우려에 따른 건전성 관리 강화를 주문한다. 한은은 지난달 낸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금리 상승기에 확대한 기업대출은 은행의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산업별로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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