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이는 불가, 원격 시험도 무리…“중증질환 환자들, 참여 기회 없어 속태워”
전국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공백과 진료 축소가 지속되면서 제약·바이오 및 의료기기 기업들의 임상시험도 난항을 겪고 있다. 임상시험 과정 중 전공의들이 담당하는 업무가 적지 않아, 수련병원이 정상화되기까지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개발 일정을 미뤄야 하는 상황이다.
2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상반기 국내 의약품과 의료기기 임상시험은 예년과 비교해 급감하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올해 2월 말부터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이탈하면서 새로운 연구를 개시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약과 신의료기기 임상시험은 대부분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수련병원인 대형병원, 대학병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의료 공백과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인한 타격이 컸다.
실제로 올해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예년과 비교하면 수치가 급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나라에 따르면 2월 29일부터 7월 22일까지 승인된 임상시험은 총 38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승인 건수 478건 대비 98건(20.5%) 줄었다. 특히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면서 교수들도 휴진 및 근무 축소를 하면서 신규 환자 유입이 없던 점도 임상시험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전공의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만큼, 전날부터 시작된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 상황이 임상시험 활성화에 관건으로 꼽힌다. 다만 연세대 의대와 성균관대 의대 등 일각에서는 교수들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보이콧을 선언했고, 사직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 응시해 의료 현장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미지수여서 기업들의 시름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한 정형외과 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투약, 지속적인 환자 관찰, 기관 간 소통, 수치 기록 및 관리까지 모든 과정에 전반적으로 달라붙어 일을 한다”라며 “아무리 교수들이 병원에 남아있다고 해도, 연구팀 없이 혼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는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임상시험 대상 환자 모집에도 차질이 커, 신규 임상시험 감소세는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들이 임상시험 등록을 위해서는 해당 연구가 진행 중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올해 초부터 수도권 대학병원들은 신규 환자를 대부분 받지 못하고 있다. 줄어든 일손을 응급실과 분만실 등 필수 시설 유지에 투입하고, 기존에 입원·내원하고 있었던 중증 환자를 돌보는 데 집중하면서다.
업계는 원격이나 비대면 등 임상시험을 지속할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정부 규제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외국계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지역 의료기관에 다니는 환자들도 원격으로 모니터링을 받으면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분산형 연구방식이 보편화했다”라며 “한국은 비대면 진료나 디지털 기술 접목에 워낙 조심스럽다 보니, 국내 의료 현장에 도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신약 임상시험 참여를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는 중증질환 환자들도 피해가 큰 실정이다. 특히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시도할 수 있는 옵션을 모두 사용한 환자들은 임상시험 참여 기회가 줄어 좌절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바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현재 새롭게 열리는 임상시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상황”이라며 “서울 소재 메이저 대학병원들도 새로운 환자들을 안 받기 때문에 환자들의 임상시험 참여 기회를 얻기 어려워 속을 태우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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