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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29]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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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지혜 기자]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오랜만에 아이와 놀이터로 나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갑게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는 장마 동안 거의 밖에 나가 놀지 못했다. 그래서 모처럼 신나는지 내가 벤치에 앉아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터 곳곳을 탐색하며 뛰어다녔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 <무지개 줄넘기>가 떠올랐다. 하늘이 한바탕 비를 쏟아붓고는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에 무지개 줄넘기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이 책을 읽어달라며 가져올 때마다 나는 ‘그래, 꼭 네 얘기네’라고 생각한다.

최근 서너 달 동안 아이 울음과 떼가 점점 심해졌다. 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머리를 감길 때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이는 발버둥을 치며 온 힘을 다해 운다. 물론 아이는 이렇게 울더라도 일단 진정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해한다. 반면에 나는 울음소리를 듣느라 진이 빠진 채다.

의사나 치료사는 아이가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하고, 수용언어보다 표현언어가 낮은 데서 오는 문제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제각기 궁극적인 원인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만, 나에게는 당장 아이 울음과 생떼에 맞설 방법이 있어야 한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

치료사는 아이가 바닥을 뒹굴며 울어도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반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물론 아이의 울음을 무시하기가 어려우시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치료사는 언제나 내가 아이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리라 짐작한다. 예전에 다른 치료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아이 요구를 곧바로 다 들어주셨을 거예요. 아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 요구를 곧바로 다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참을성 있게 아이 생떼를 견뎌 왔다. 올바른 훈육법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별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달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나도 일상생활은 해야 한다. 일례로 내가 화장실에 가는 걸 아이가 싫어해서 떼쓰듯 울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도 용변은 봐야 하니, 그냥 두는 수밖에.

게다가 아이는 일단 분노발작을 시작하면, 그 뒤에 요구를 들어주어도 울음과 떼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달래려는 시도가 더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진정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주도권은 온전히 아이에게 있는 셈이다. 치료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언제쯤이면 아이가 화장실 문 앞에서 울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는 모습을 안 볼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머리를 감길 때 아이가 소리를 지르지 않게 될까. 언제쯤이면 아침에 아이 울음과 발길질이 아니라 인사와 미소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아지긴 하는 걸까.

한숨을 쉬었다가 고개를 돌리는데, 어라, 내 시야에 있던 아이가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는데 저 멀리 나무 뒤에서 아이가 나온다. 언제 저기까지 뛰어간 것인지. 한숨을 쉬며 다시 벤치에 앉았다. 오늘도 온갖 생떼를 부려서 내 진을 빼놓고, 자기는 저렇게 해맑게 뛰어논다.

아이가 나를 향해 환하고 예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엄마” 하고 내게 달려와 와락 안기더니, 그걸로도 부족한지 나를 타고 오르며 더 안기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이번 장마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어쩌면 비 사이사이 무지개도 볼 수 있겠지.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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