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조업은 물론, 금융기관들도 탄소배출량을 줄이려 노력하는 가운데, 국내 금융그룹도 ESG 실천 일환으로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른바 ‘금융배출량(자산 포트폴리오내 탄소배출량)’ 감축을 통해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심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산출 방식이 제각각이라 제대로 된 지표로써 기능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공시 의무화와 함께 배출량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4대 금융지주가 내놓은 각사의 ‘2023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의 금융배출량이 5817만톤(tCO2eq)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신한금융그룹 5006만톤 ▲KB금융그룹 4922만톤(2022년 말) ▲하나금융그룹 2379만톤 등으로 뒤를 이었다. ‘금융배출량’은 금융사가 대출·주식·채권 매입 등 신용공급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에 간접적으로 일조한 부분을 뜻한다.
국내를 비롯해 대다수 글로벌 금융기관이 배출량 측정에 사용하는 회계표준은 국제 민간기구 PCAF(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가 제안한 측정 방법에 따른다. PCAF는 ▲상장사 주식 및 회사채 ▲기업대출 및 비상장주식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업용 부동산 ▲모기지 ▲자동차 대출 ▲국채 등 7개 자산군에 대한 산정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금융기관 간 단순 비교가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배출량 공시는 의무가 아니라 자율인 데다, 배출량 측정 방법 및 기관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차주(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은행들은 PCAF가 제시한 평가 부문 중 일부만을 측정하고 있다. 4대 금융그룹이 공시하는 배출량 평가 부문 중 공통적으로 비교 가능한 항목은 ▲은행 보유 주식 ▲기업대출 ▲회사채 등 3가지 정도만 꼽힌다.
KB금융은 4대 금융그룹 중 가장 많은 부문을 탄소배출량 측정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공시 직전 연도(2023년) 배출량을 산출하는 타 금융그룹과 달리, 전년(2022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KB금융그룹 관계자는 “차주 기업의 2022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은 정보는 2024년 초에 공시된다”며 “환경부 기준에 따라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타 그룹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사가 차주(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게 끔 촉구하는 취지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국내의 경우 높은 제조업 여신 비중, 중소기업 중심 여신 구조, 녹색금융 인프라 부족 등으로 해당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실제로 국내 금융기관들은 금융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에 대한 여신 심사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등, 자사 포트폴리오를 유리한 방식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국은행도 “국내은행의 금융배출량 감소는 은행 감축 노력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공시한 목표치와 실적치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은행의 경우 평판리스크에 노출되거나 글로벌 투자자금 이탈 등으로 인한 경쟁력 저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금융배출량을 중심으로 기후공시와 녹색금융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금융기관의 배출량 감축 노력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상훈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지속가능성장연구팀 과장은 “금융권의 경우 고탄소 배출 산업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 금액)를 늘리게 되면, 탄소배출량이 단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금융당국이 명확한 표준을 마련하고 공시를 규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IT조선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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