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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에 일회용 컵 탑 생겨요…씻어서 버리면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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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점심시간 지나잖아요, 탕비실에 일회용 컵 탑이 생겨요. 다 겹쳐 쌓으면 허리까지 올 걸요.”

서울 중구 을지로 소재 한 기업을 다니는 손 모 씨(29)는 한 층당 50명 규모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손 씨는 “10명 중 9명은 음료를 마실 거다. 우르르 버려지는 컵들을 볼 때마다 심란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손 씨는 ‘일회용 컵 탑’이 생기는 건 “비교적 양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층은 문화가 잘돼있어서 씻어서 따로 쌓아놓는 것”이라며 “음료가 남은 채로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는 게 어디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22일 낮 12시 35분쯤 서울 중구 무교동 골목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앞. 30명이 음료를 사 가는 동안 텀블러를 챙겨온 이는 2명뿐이었다. 나머지 28명은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아 갔다.

대부분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와 협약한 17개 프랜차이즈 카페·패스트푸드점에서 집계한 지난해 일회용품 사용량은 9억 3989만여개로 나타났다. 그중 종이컵은 약 3억 8220만개, 플라스틱 컵은 5억 5769만여개다.

이렇게 소비된 일회용 컵은 대부분 제대로 버려지지도 않는다.

서울 중구 소재 다른 기업 직장인 강 모 씨(29)는 “회사에 커피를 가져오는 사람을 보면 거의 95%가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는다”며 “컵을 씻어서 버리는 건 고사하고 분리배출도 안 하고 막 버린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소재 또 다른 기업 직장인 신 모 씨(30)는 “대부분 친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계’처럼 돈을 모으면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신다”며 “매일 커피를 마시지만 대부분 텀블러를 챙겨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2020년 6월 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도입되면서 일회용품 사용량을 감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과 자영업자 경영난 등을 이유로 전면 도입이 미뤄지면서 다시 무뎌졌다.

심지어 2025년 전면 도입을 앞둔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사실상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2일 인사청문회에서 “직접 해 본 경험으로 볼 때 시민들이 컵 보증금제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직 아니다”고 말했다.

추가 비용을 우려한 소상공인들의 반대도 여전하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내고 “소상공인이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을 위한 스티커 구입비와 보증금 추가에 따른 결제 수수료, 컵 세척 인건비, 반환 컵 보관을 위한 공간 확보 등의 비용을 감내하는 상황”이라며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보증금제가 계속 미뤄지는 동안 자발적으로 사내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한 일부 기관·기업도 있다. 공공 영역에선 서울시교육청, 경기도청 등이 청사 내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직원들은 규제 시행 초기에는 다회용기를 챙겨 다녀야 해 불편했지만 점차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회용 컵, 배달 용기 등을 비롯한 일회용품 사용과 탕비실 내 종이컵 비치를 금지한 한 기업 직원 윤 모 씨(29)는 “일회용 컵을 가지고 들어가면 로비에서부터 경비원에게 잡힌다. 처음에는 매일 텀블러를 들고 다녀야 해서 너무불편했지만 별 수 없어 챙기다 보니 적응돼 괜찮다”고 말했다.

정책 전문가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 이뤄지는 민간 자체 규제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일회용 컵 사용을 대폭 줄이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규제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사내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는 건 좋은 현상이지만 민간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 민간이 이런 규제에 나서는 걸 보면, 시민들이 일회용 컵 규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기후 위기에 대해 인지하고, 일회용 컵 규제에 공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통해 계속 메시지를 줘야 한다. 또 보증금제 도입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보전해 주는 등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머니s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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