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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 번개를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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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양동이로 퍼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높음 습도 때문인지 몸의 땀구멍 모두가 일순간에 닫히는 느낌이다. 마트에 가느라 아주 잠시 나갔다 왔는데, 한 시간쯤 물 속을 걸어갔다 온 것처럼 몸이 무겁고 지친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 오래 이어지면 천둥, 번개가 요란을 떠는 날도 늘어난다.

번개 중 일부는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벼락 혹은 한자식 표현으로 낙뢰라 부른다. 우리에게 벼락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빗대어 ‘벼락 맞을 놈’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예상치 못한 고난을 빗대어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라 한다. ‘죄는 천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 라는 속담은 나쁜 짓을 해서 이익을 차지하는 사람과 그것에 대한 벌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를 비유할 때 쓴다. 이처럼 벼락은 재난, 불행 혹은 벌받음 등의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번개로 인해 많은 재해가 일어나기 때문일 거다. 일례로 지난 2022년 인도에서 낙뢰로 인한 사망자 수가 900명이 넘었다고 한다.또한 2020년 캘리포니아 북·중부 지역에서는 벼락 한방에 의해 서울 면적(약 605제곱 평방미터)의 9배가 넘는 넓이의 산림이 거의 전소되는 일이 있었다. ‘구름 속 자객’이란 별명이 딱 맞아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번개 입장에서는 재난이나 불운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만 남는 게 많이 억울할 수 있다. 번개를 위한 변론을 위해 질소(N) 원소가 필요하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5분의 4를 차지한다. 흔하지만 그렇다고 가벼이 볼 수는 없다. 이유는 질소는 식물의 세포 골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양 내 질소 원자는 ‘질산염’이라는 무기물 형태로 존재한다. 질산염 종류는 다양하지만, 모두 물에 잘 녹는다. 때문에 식물이 토양에서 흡수하는 물 속에는 소량의 질산염이 들어 있고, 식물은 이를 원료로 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질소 화합물, 특히 단백질과 작은 생체 분자인 핵산 즉, RNA와 DNA를 만든다. 그리고 초식동물이나 초식동물을 먹는 육식동물은 식물의 단백질과 핵산을 더 작은 단위로 분해해 흡수한 뒤, 다시 자신에게 맞는 단백질과 핵산으로 재구성한다. 이처럼 육상 생물은 모두 토양 내 질산염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질산염은 종류와 무관하게 모두 물에 잘 녹는다.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질소 화합물은 모두 강으로 바다로 씻겨 내려가게 되고, 질산염이 다시 보충되지 않는다면 육지는 완전 사막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대기 중 질소 비율이 80퍼센트나 되는데 무슨 걱정인가 싶지만, 불행히도 식물은 이 질소를 직접 흡수할 수 없다. 때문에 질소를 고정, 즉 생명체가 이용가능한 형태인 암모니아나 질산염 등의 화합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번개가 크게 한 몫을 한다.

대기에서 번갯불이 한번 번쩍일 때마다 순간적으로 그 주위의 대기 온도는 섭씨 30,000도까지 가열된다. 이는 태양 표면의 온도(6000도)보다도 4배나 높은 수치다. 이 높아진 온도 덕분에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해 ‘이산화질소(NO2)’를 만든다. 그리고 이 NO2가 물에 녹아 (이렇게 이산화질소가 만들어질 때에는 대개 비가 내리는 중이므로) 질산이 되고, 이게 땅에 떨어지면 질산염으로 변한다. 이렇게 해서 토양은 비옥해지고 육상생물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번개의 선한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번개는 다른 말로 전기의 대량 방출이다. 다른 말로 번개는 에너지 덩어리다. 번개가 한번에 내보내는 에너지는 약 100억킬로와트(kW)에 이른다. 소양강댐의 전력량이 약 20만kW이니 발전소 5만개 분량의 엄청난 에너지를 한번에 흘려보내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막강한 에너지 덕분에 번개가 칠 때마다 오존 그리고 Hydroxyl Radical(하이드록실 라디칼)이란 본명을 가진 수산기(OH)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하이드록실 라디칼은 온실가스인 메탄이나 교통, 산업 배기가스 등의 유해가스를 만나면 그 즉시 오염물질들을 산화시켜 물로 만든다. ‘공기 세척제’란 별명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지난 2021년 펜실베니아 대학의 윌리암 브룬(William Brune)교수와 그 연구팀이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기 중 수산기 산화제의 16퍼센트 정도가 번개로 인해 만들어진다. 번개 쇼가 끝나고 비가 그치면 세상이 다시 태어난 것 같고, 공기가 깨끗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우연이 아니다.

번개가 사람이나 동물의 목숨을 빼앗고 숲에 불을 지르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는 이득은 해악보다 분명히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낙뢰 발생 횟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도 전국 평균 낙뢰 일수가 1980년대 12.1일에서 1990년대 14일, 2000년대엔 17.4일로 늘어났다(기상청의 낙뢰연보 참조). 잦아지는 낙루의 뒤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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