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900억원이 넘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증여세 과세 가능성을 언급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은 증여세 과세가 ‘노태우 비자금’을 인정하는 꼴인 만큼 이를 반기기 어려워 보인다.
19일 세정 당국에 따르면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전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증여세 과세 여부를 묻는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시효가 남아 있고 확인만 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또 “904억원은 음지에서 양지로 처음 나온 돈이고 불법 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국세청에서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 소송 항소심을 통해 처음으로 실체가 드러났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 메모에 따르면 비자금 규모는 904억원에 달한다.
메모 2개에는 1991년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측에 300억원이 전달됐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300억원 외에 최 서방(최태원 회장), 노 전 대통령 동생 노재우씨 등 일가에게 배정된 604억원이 더 적혀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300억원이 최 회장의 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흘러가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봤다.
이혼 소송에서 불거진 비자금의 경우 불법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7년)가 지났고,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공소 유지가 어려워 몰수·추징 절차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증여세 납부 의무는 유효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증여세를 회피한 경우, 세무공무원이 해당 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과세를 할 수 있다. 세무공무원이 인지한 시점을 2심 판결일(5월30일)로 본다면 내년 5월 29일까지 징수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최 회장과 SK그룹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은 “항소심 결과를 보고 SK가 제6공화국의 비자금과 비호 아래 성장했다는 정의가 내려져 버렸다”며 “6공의 유·무형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법원 판단만은 상고심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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