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애들이 와서 ‘뉴진스’, 그러더라고. 있으면 얼마든지 팔겠는데 더 없어서 못 팔아요. “
19일 오전 9시쯤 아직은 한산한 서울 종로3가역 인근 세운상가 2층. 중고 디지털카메라(디카) 가게 터줏대감인 ‘종로디지탈’ 사장 이규태(65) 씨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가게에 불을 밝혔다.
벽에 200개가 넘는 1990년대, 2000년대 디카를 쌓아두고 파는 이 씨는 금요일과 주말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20대 성인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도 10명 이상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보다 이곳에 있는 카메라의 연식이 더 높은 셈이다.
1982년부터 카메라 가게를 운영해 온 이 씨는 “요즈음 장사가 제일 잘된다. 작년보다 가격이 더 올라 100% ‘따블'(더블·두 배)”라며 디카 인기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디카 대부분은 2000년대 기종으로, 가격은 충전기 포함 15만 원이다.
아이돌 그룹 뉴진스 하니의 ‘푸른 산호초’ 무대가 이끈 ‘노스탤지어'(향수) 열풍에 힘입어 종로·남대문 일대 중고 카메라 가게들은 다시 찾아온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하니가 지난달 26~27일 일본 도쿄돔 팬 미팅 ‘버니즈 캠프’ 당시 ‘푸른 산호초’ 노래를 부른 무대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 수 651만 회를 기록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 뒤로 원곡자인 1980년대 일본 가수 마츠다 세이코의 활동 당시 무대 영상으로까지 관심이 옮겨갔다. 지금보다 훨씬 뒤처진 기술의 카메라로 촬영한 그 시대 영상들은 흐릿하고 칙칙하지만, “오히려 낭만적” “그 시대에 살아보고 싶다”며 열광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이런 유행에 힘입어 현재를 마치 과거인 것처럼 담을 수 있는 디카와 캠코더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종로디지탈 옆집 ‘현대카메라’에도 벽 전체를 둘러싼 진열장 안에 중고 카메라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이곳 사장 김 모 씨(69)도 1992년부터 가게를 운영해 온 이래 최근 다시 돌아온 디카 전성시대를 실감한다고 했다.
김 씨는 “20년 치가 최근 많이 나가서 더 이상 매입을 못 할 정도다. 원하는 대로 나오는 모델을 찾아다니려고 집집마다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손님들은 누가 옛날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나오는 카메라를 찾아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 중고 카메라 후기와 판매글에는 “화질 구지(구리다) 최상급”이란 홍보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화질이 좋지 않을수록, 복고 감성이 충만할수록 선호도가 높고 가격도 높은 편이다. 디카를 찾는 이들은 비교적 선명한 결과물이 나오는 1000만 화소 카메라에 실망하고, ‘손떨방'(손 떨림 방지) 기능이 있을 리 없어 과격하게 흔들리는 뿌연 영상을 담아내는 200만 화소에 열광한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카메라를 통해 직접 그 시대에 다가가 보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아울러 ‘최첨단’으로 점철된 지금과 다른 ‘아날로그’적인 문화가 젊은 세대에게 신선함을 주면서도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 세대는 새로운 걸 찾는 경향이 있는데 예전의 문화가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세상이 각박하고, 그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도 있는데 과거를 통해 얻는 향수를 통해 위안받기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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