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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의 문화살롱] 11가족이 공유하는 집·잠시 머무는 집…다양한 삶을 마주하다

아주경제 조회수  

고산집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1가족이 공유하는 ‘고산집’.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옥수수 일병 구하기’를 어제 야간을 틈타 기습적으로 실시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풀들은 섬멸됐지만 다행히 ‘옥수수 일병’ 7명은 살아 있었습니다.”
 
11가족이 공유하는 제주 ‘고산집’(건축가 이창규+강정윤)에는 그날그날 일을 적는 일지가 있다. 그 덕분에 ‘고산집’에 있지 않더라도 집에 관한 일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옥수수 일병 구하기’를 통해 수확한 옥수수를 냉동실에 넣어뒀고, 출입구 양옆에 봄꽃 양귀비와 가을꽃 노란 코스모스 등을 심었다는 세심한 글에는 나머지 10가족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전이 지난 19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막했다. 기본 거주 단위인 ‘집’을 통해 2000년 이후 동시대 한국 현대 건축과 주거 문화를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조망해보는 전시다. ‘개인과 사회, 장소, 시간’을 주요 주제로 도시 속 다양한 주거 방식과 미학적 삶의 형식을 발굴한다.
 
전시에는 건축가 30명(팀)의 단독·공동주택 58채가 소개된다. 승효상, 조민석, 조병수, 최욱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성 건축가부터 양수인, 조재원 등 중진, 그리고 비유에스, 오헤제건축 등 젊은 건축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이들은 집을 통해 가족 구성원과 라이프스타일 변화, 기후위기 등 점점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질문한다.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 대안적 선택으로 자리 잡은 집들을 통해 삶의 능동적 태도가 만든 미학적 가치와 건축의 공적 역할을 전달한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건축가와 거주자의 작품과 자료로 구성된 관람 중심의 2전시실과 이를 워크숍, 영화, 강연 등으로 확장하는 참여형 공간의 1전시실로 구성됐다. ‘선언하는 집’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 ‘관계 맺는 집’ ‘펼쳐진 집’ ‘작은 집과 고친 집’ ‘잠시 머무는 집’ 등 총 6개 주제로 58채에 대한 집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시장에는 건축가의 설계 과정을 살펴보는 건축 자료, 건축주의 삶의 흔적이 담긴 생활 자료와 함께 영상과 모형 등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잠시 머무는 집’은 생의 주기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주거의 시간성을 논의한다. 앞서 소개한 ‘고산집’을 비롯해 ‘여인숙’(임태병)과 ‘뜬 니은자 집’(조재원) 등을 통해, ‘4도3촌’(4일은 도시에서 살고 3일은 농촌에서 사는 삶)으로 불리는 중장년층의 최근 생활 방식과 다양한 거주 감각을 실험해 가는 젊은 세대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관계 맺는 집’은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를 상상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로 더불어 살아가는 집짓기 실천에 주목한다. ‘대구 앞산주택’(김대균), ‘써드플레이스 홍은 1-8’(박창현), ‘이우집’(박지현+조성학) 등 단독주택이지만 그 안에 회합의 장소가 있는 집, 타인과 공유하는 집을 들여다본다.
 


경기 남양주에 있는 ‘잔서완석루’도 관계 맺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비 파편을 모아둔 서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추사 김정희의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로 집의 이름을 지었다. 이름처럼 이곳에는 큰 서재가 있으며, 국어교사 등 각종 교육 관련 연구 모임이 이뤄진다.
 
전시를 준비한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가 ‘집은 작은 도시, 도시는 거대한 주택’이라고 말한 것처럼 집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 함께 살기 위한 공공적 측면도 갖고 있다”고 짚었다.

‘잔서완석루’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잔서완석루’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선언하는 집’은 공간 개념과 형식을 강조하는 집이다. 집 내·외부의 공간 경험을 극대화하고, 건축 요소들이 일상 활동에 집중하기보다 심미적인 측면에 맞춘 특징을 드러낸다. ‘수백당’(승효상), ‘땅집’(조병수), ‘축대가 있는 집’(최욱), ‘베이스캠프 마운틴’(김광수) 등을 살펴본다.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은 가족의 규범이었던 4인 가족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반려 개념을 재구성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홍은동 남녀하우스’(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정릉주택 & 지하서재’(조남호), ‘맹그로브 숭인’(조성익) 등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요즘 사람이 아닌 동식물과 함께 사는 집, 3대가 함께 사는 집, 1인 가구를 위한 집들을 소개한다.
 


‘반려동물’은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묘각형주택’(박지현+조성학)은 두 고양이와 두 사람이 어떻게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고민 끝에 편리하고 위생적인 고양이 화장실과 털을 차단할 수 있는 막힌 구조의 드레스룸을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고개집’에는 사람 두 명, 고양이와 개가 각각 두 마리씩 총 여섯 식구가 산다. 콘크리트 폴리싱으로 바닥을 마감해 동물 침이나 털 청소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고 더위를 많이 타는 개들이 바닥에 누워 쉴 수 있도록 고려했다.

‘묘각형주택’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묘각형주택’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펼쳐진 집’은 시골의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에 관한 이야기다. 농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집짓기 사례들을 통해 과거 전원주택으로 대표됐던 시골 집짓기의 변화를 살펴본다. ‘목천의 세 집’(이해든+최재필), ‘와촌리 창고 주택’(정현아), ‘볼트 하우스’(이소정+곽상준), ‘아홉칸집’(나은중+유소래) 등이 소개된다.
 
‘작은 집과 고친 집’은 도시의 한정된 자원과 장소성에 대응하는 집이다. 대규모로 조성된 신도시 필지가 아니라 도심 속 독특한 형태의 땅을 찾아 올린 집부터 오래된 집을 고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픽셀 하우스’(조민석), ‘얇디얇은 집’(안기현+신민재), ‘쓸모의 발견’(박지현+조성학), ‘Y 하우스 리노베이션-만휴당’(서승모) 등이다.

축소된 집의 내부를 탐색할 수 있는 건축학교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축소된 집 내부를 탐색할 수 있는 ‘건축학교’ 상설 워크숍.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전시 감상의 폭을 넓히기 위한 워크숍, 영화 상영, 강연 등 풍부한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워크숍 ‘건축학교’는 상설 워크숍과 어린이 건축학교로 구성됐다.
 
상설 워크숍은 전시 출품작인 ‘아홉칸집’ ‘베이스캠프 마운틴’ ‘얇디얇은 집’에 대한 건축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축소 재현된 집의 내부를 탐색하고 수직 동선을 단면도에 표시하는 등 건축의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린이 건축학교는 강사와 함께하는 초등학교 3~6학년 대상 특별 프로그램으로 오는 9월까지 진행된다. 이 밖에도 전시실 중앙에 마련된 가변 극장에서 6개 주제로 구성된 단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는 ‘주말극장’이 운영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집’을 통해 삶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전시”라며, “현대미술의 장르 확장과 함께 건축예술과 삶의 미학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5년 2월 2일까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아주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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