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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여성 100명 농락…’순결한 정조만 보호’ 명판결 낳은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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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955년 7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지방법원 권순영 판사(1920년~1977년)는 희대의 명문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권 판사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것을 밝혀 둔다”고 한 뒤 “주문, 피고 박인수의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며 재판봉을 두들겼다.

박인수 1심 판결을 보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지금의 서울 덕수궁길 서울시립미술관 자리) 대법정을 가득 메우고도 부족해 덕수궁 돌담길까지 길에 늘어섰던 방청객, 서울 장안의 언론사라는 언론사가 모두 파견한 기자들은 순간 침묵에 빠졌다.

짧은 침묵이 지나간 뒤 기자들은 엄청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 회사로 뛰어갔고 상당수 방청객은 ‘무슨 소리냐’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법은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권 판사의 선고문은 이후 법대생이라면 누구나 외워야 할 명판결, 명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시대를 앞서간 명판결, 한국전쟁 후 혼돈 속에서 도덕적 타락에 빠졌던 한국 사회에 대한 경종이라는 찬사가 나왔지만 ‘도대체 여성 정조란 무엇인가’ ‘여성의 성 자기 결정권이라는 게 말이 되냐’ ‘대놓고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말이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6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와 다른 관점에서 ‘여성 비하’ ‘남성 우월주의 관점에서 나온 판결’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2024년의 잣대로 1955년 당시를 평가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 허우대와 얼굴만큼은 당대 최강 박인수…제임스 딘 얼굴, 핏한 몸매, 176cm 장신

1955년 한국 사회를 들었던 놓았던 박인수(1929년생)는 지금 기준으로도 손색없는, 당대 최강 얼굴 천재였다.

뚜렷한 이목구비, 짙은 눈썹, 멋진 헤어스타일에다 무엇보다 할리우드 전설 제임스 딘을 빼다 박은 얼굴을 가졌다.

여기에 당시 한국 성인 남성 키가 평균 164cm 남짓했던 것에 비해 박인수는 176cm에 달했다. 모델, 농구선수를 해도 충분할 정도로 키, 얼굴, 몸매 3박자를 모두 갖췄다.

◇ 훤칠한 미남에다 대졸 헌병 대위, 춤 솜씨까지…14개월 사이 100여명 가까운 여성들 농락

박인수는 이런 하드웨어에다 대졸의 해군 헌병 대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군 장교가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던 시절이었기에 ‘나 이런 사람’이라고 말만 해도 모든 이들이 호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빼어난 사교춤 솜씨까지 갖춰 장교클럽, 일종의 나이트클럽이었던 국일관 등을 휩쓸고 다녔다.

박인수는 서울 모 대학교에 다니다가 한국전쟁이 반발하자 그만두고 해군 헌병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나름 권력이었던 헌병 부사관 지위를 이용해 사교춤을 배웠고 대학물을 조금 먹었기에 ‘내가 대학 다닐 때~’이런 말이 가능했고 군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다.

여기에다 정보사회가 아닌 관계로 박인수의 말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 명문 여대생, 고위층 딸 등 상류층 여성들 박인수에게 홀려

박인수는 1954년 4월부터 서울 시내 댄스홀을 찾아다니며 여성들과 어울렸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 시내에 등장한 댄스홀은 미국 스타일로 상류층이 드나들던 장소로 이후의 카바레 등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댄스홀에 상류층 부인들이 드나든 것을 주제로 삼은 소설가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법대 교수 부인’을 주인공으로 했다며 황산덕 서울법대 교수(법무 문교부 장관 역임)가 정비석과 논쟁을 펼친 일은 유명하다.

박인수는 댄스홀에 가면 상류층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졸 해군 장교’ ‘얼굴 천재’를 무기로 여성들에게 손짓, 사교춤으로 정신을 빼놓고는 곧장 여관으로 직행했다.

여성들은 군 장교가 최고 엘리트 계층이었던 만큼 박인수를 통해 달콤함 미래를 꿈꿨다.

그가 가짜 신분이 들통난 1955년 5월까지 14개월 동안 농락한 여성은 100명에 가까웠다. 이들 중 상당수는 명문대 여대생, 고위층 딸, 부자집 아가씨들이었다.

◇ 경찰관 여동생에게 “결혼하자” 속삭인 뒤 모르쇠…오빠가 박인수 정체 밝혀

숱한 여성들을 유혹해 용돈, 생활비, 품위 유지비를 타 낸 박인수는 1955년 초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자”며 한 여대생을 유혹, 잠자리를 가진 뒤 안면을 바꿨다.

박인수를 찾아 다지던 여대생은 경찰 간부였던 오빠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분노한 오빠는 박인수를 잡아들여 그가 장교행세를 한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여대생 2명 ‘혼인빙자 간음’으로 고소…박인수 “70명과 잠자리, 그중 단 1명만 순결”

박인수가 ‘가짜 장교였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이에 2명의 여대생이 박인수를 ‘혼인빙자 간음’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박인수 사건은 서울을 넘어서 전국적 화젯거리가 됐고 언론들도 그의 말을 앞다퉈 전했다.

특히 박인수가 “70명 가까운 여성과 잠자리(이후 100명으로 진술 변경)를 했지만 순결했던 이는 미용사 단 1명뿐이었다”고 한 법정 진술은 한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다.

박인수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지 않고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문란한 사생활’ 등 자극적인 말이 넘쳐났다.

◇ 권순영 판사 “법은 정숙한 여성만 보호”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무죄…해군 대위 사칭, 벌금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955년 7월 22일, 아침부터 대법원, 서울지법과 고법이 위치한 덕수궁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몰려든 인파를 정리하기 위해 기마경찰대가 동원됐지만 서로 법정으로 들어서려는 사람들을 막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권순영 판사는 “법은 정숙한 여성만 보호할 뿐”이라며 혼인빙자 간음에 대해 무죄, 공무원 사칭 혐의(해군 대위)에 대해서는 벌금형(2만환)을 내렸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2심은 혼인빙자 간음죄를 인정 징역 1년형을 선고, 법정구속시켰다.

박인수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 1년형이 확정됐다.

◇ 혼인빙자 간음죄, 2009년 11월 위헌…간통죄 2015년 위헌 폐지

박인수 발목을 잡았던 혼인빙자 간음죄는 한국전쟁 종전 직후인 1953년 형법 제정 때 간통죄와 함께 등장했다. 당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배려한 법이었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점점 중요시되는 시대를 맞아 여러 논란 끝에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가 “남성만을 처벌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등 여성 존엄을 해친다’며 위헌 결정, 사라졌다.

간통죄 폐지는 여러 차례 헌재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2015년 2월 26일 위헌 결정이 떨어져 62년 만에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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