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금을 청구한 A씨는 보험사로부터 현장조사 대상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조사를 담당하는 손해사정사는 A씨에게 치료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캐묻고, 애플리케이션을 조회해야 한다며 A씨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러 동의서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경황이 없던 A씨는 모두 동의했는데, 아무 서류에나 서명하면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보험사는 고객의 보험금 청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현장조사를 진행한다.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한 뒤에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통상 보험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험금이 청구되거나, 고액의 보험금이 청구되는 경우, 도수치료·피부치료 등 반복적인 치료를 받았을 때 현장조사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손해사정사들은 조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러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와 진료기록 열람 동의서, 의료자문 동의서다. 일부는 서류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서류에 서명해야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선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는 서명해도 무방하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 심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실손보험 표준약관에 규정된 내용이기도 하다.
진료기록 열람 동의서도 서명해야 심사가 진행된다. 다만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청구와 관련 없는 과거 진료 기록까지 제공할 것에 동의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는 당장 보험금 지급 심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다른 보험금 청구를 거절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가령 당뇨병으로 A·B·C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실손보험금을 청구했다면, A·B·C병원에 대한 진료기록 열람에는 동의해야 한다. 반면 당뇨병과 관계없는, 교통사고로 D병원에서 받은 진료에 대한 기록 열람에는 서명해 줄 필요가 없다. 또 당뇨병으로 6개월 동안 진료를 받았다면 진료 기간도 6개월로 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사정사들은 과거 3~5년 동안의 진료기록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보험금 분쟁의 원인 중 하나인 의료자문 동의서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의료자문은 보험금 청구에 의학적 근거가 미비하다고 판단될 때 다른 전문의에게 고객의 의료정보를 넘겨 과잉진료 소지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백내장 수술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다면, 정말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는 뜻이다. 의료 자문 결과가 기존 진단과 다르게 나오면, 보험사는 이를 근거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일부만 지급한다.
의료자문은 보험사 의뢰에 따라 진행되는 만큼 보험사에 편향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 고객들은 자신을 직접 진료하지도 않은 전문의가 자료만 보고 내린 자문을 근거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토로한다.
일부 손해사정사들은 의료자문 동의서에 서명하는 것이 의무라고 주장하지만, 정답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전문가들은 의료자문 동의보단 치료받은 병원에서 보험사가 의문을 품는 부분에 대한 자료를 제공받아 제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또 제3의 종합병원을 지정한 뒤 의사를 대면해 객관적인 판정을 받는 방법(동시감정)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불편하다면 ‘손해사정사 선임권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이는 보험사와 계약된 손해사정사가 보험사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를 막기 위해 독립된 제3의 손해사정사로부터 객관적인 조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고객은 보험사로부터 현장조사 대상이 됐다는 전화·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3영업일 이내 독립손해사정사를 선임한 뒤 이런 사실을 보험사에 알리면 된다. 실손보험금 단독 청구 시에는 보험사가 선임 요청을 거절할 수 없고, 선임 비용은 보험사가 전액 부담하게 된다.
☞올받음은
손해사정사와 상담·업무의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어슈런스가 운영하고 있다. ‘실손보험 손해사정사 선임권’ 서비스를 운영하며 실손보험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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