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해 일명 ‘고문 기술자’라는 악명을 떨친 전직 경찰관 이근안이 국가에 33억6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9일 뉴스1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이세라)는 국가가 이근안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한 금액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이근안 측은 재판 변론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청구한 33억6000만원은 그대로 인용됐다.
지난 1982년 일명 ‘김제 가족간첩단 조작 사건’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소속이던 이근안은 공안검사 정형근과 함께 구타와 고문으로 이들의 허위자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고 최을호씨가 북한에 납치됐다 돌아온 뒤 조카 최낙교씨, 최낙전씨 등 2명을 포섭해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최을호씨는 사형을 선고받아 형이 집행됐고 최낙교씨는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최낙전씨는 출소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 최을호씨는 지난 2017년 6월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되면서 결국 누명을 벗었다. 이후 최을호씨 등 3명의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국가가 유족에게 114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정부는 이근안을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부담하라며 구상금 소송을 걸었다.
이근안은 지난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고문 혐의로 잠적할 때까지 대부분 대공 분야에 몸을 담았다. 고문 기술자로 불린 그는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5년 12월 납북어부 김성학 간첩 조작 사건, 1986년 반제동맹 사건 등에서 관련 피의자를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8년 12월 24일부터는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이근안은 12년째 검경의 수배를 피해 도피하다가 지난 1999년 10월28일 검찰에 자수했다. 3심까지 거친 끝에 2000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받았다. 이후 여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그는 2006년 만기출소 했다. 2008년 목사가 됐지만 교단에서는 2011년 1월 그의 목사직을 박탈했다.
이근안은 지난 2013년 1월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해당 책에는 또 다른 간첩 조작 사건을 자백하는 내용이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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