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경제신문 = 강기훈 기자]
금융당국이 책무구조도를 시범 도입하는 금융회사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시범기간에 벌어지는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은 없을지언정 ‘첫 사례’가 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시범 운영을 하더라도 연말에 다시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움 또한 남아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11일 금융감독원은 브리핑을 통해 내년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공표했다. 제출 시한은 10월 31일까지이며, 이 기간에는 은행과 금융지주 임직원이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다하지 못해도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
책무구조도란 CEO를 포함한 금융사 임원에 담당 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도록 하는 문서를 뜻한다. 1인 1역 체계를 구축해 금융범죄를 근절하는 것이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작년 12월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이달 3일에는 개정안이 시행됐다. 은행과 금융지주의 경우 내년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10월 31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면 시범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일부 은행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경우 책무구조도 초안을 마무리하고 현재 최종적으로 법률 검토를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은행과 금융지주들이 시범운영 기간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할지는 미지수다. 비록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처벌은 없을지 몰라도 다른 금융회사들을 위한 ‘교보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당 기간에도 높은 확률로 금융범죄가 적발될 수 있는데 첫 타자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은행권 내에 있다”고 말했다.
시범운영에 참여한다 한들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재차 제출해야 하는 점 또한 걸림돌로 꼽힌다. 가령, 10월 31일까지 책무구조도를 당국에 제출한 은행은 2개월 만에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다시 제출해야 하는 이유는 연말엔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는 임원 개개인에게 일일이 내부통제의 책무를 배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통상 7월과 12월에 금융권 인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진다. 큰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은행과 금융지주 입장에선 새롭게 작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사회를 다시 소집해 안건을 통과시켜야 하는 것 역시 문제다.
은행과 달리 금융지주 입장에선 책무구조도를 조기에 제출할 유인이 없다는 점 또한 문제다. 은행의 경우 주가연계증권(ELS) 등 금융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쉽다. 그러나 금융지주는 직접적으로 상품을 판매하지 않아 시뮬레이션을 시행하기 위한 자료가 부족하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정말 은행과 금융지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싶으면 제재 면제나 컨설팅 제공뿐만 아니라 이사회 의결을 면제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은행들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금융지주들은 대부분 내년 초에나 책무구조도를 제출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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