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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큰손’ 역할을 해온 금융지주사들이 최근 출자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대규모 정책펀드에 잇달아 동원되면서 위험가중자산(RWA) 관리가 어려워진 영향이다. 금융지주의 출자 여력이 대폭 줄면서 상반기 기지개를 켜는 듯했던 사모펀드(PE)의 투자 활동이 또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들이 올해 대체투자 출자를 마무리 짓고 있다. 지난해 바젤3 도입으로 금융지주의 보통주 자본(CET1) 관리가 중요해지면서다.
CET1는 RWA 대비 보통주 자본의 비율로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중 금융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수치가 클수록 위기 상황에서 손실을 흡수할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올 초부터 금융감독원은 CET1 비율을 통상적인 법정 규제 수준인 12%를 넘어 보수적으로 13%를 유지하도록 금융지주사에 권고하고 있다.
RWA는 투자자산의 위험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펀드는 대부분의 투자자산이 비상장주식이기 때문에 위험 가중치가 400% 적용된다. 금융사가 벤처나 사모펀드에 100억 원을 출자하면 RWA는 400억 원으로 계산되는 셈이다. 분모가 되는 RWA의 가중치가 높아질수록 CET1 비율은 낮아진다.
올 1분기 말 기준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의 CET1은 KB금융이 13.4%로 가장 높았고 △신한지주 13.1% △하나금융지주 12.9% △JB금융지주 12.3% △우리금융지주 12% △BNK금융지주 12% 순이었다. 업계에서는 대출 증가에 따른 RWA 확대로 대부분 금융지주사들의 2분기 CET1 비율이 13%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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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의 주도로 시중은행이 동원된 정책펀드는 △은행권 공동 중견기업전용펀드 △미래에너지펀드 △기후기술펀드 등 3개다. 은행권 공동 중견기업전용펀드는 총 5조 원 규모로 조성되며 이 중 절반을 5대 시중은행이 책임진다. 시설투자·연구개발(R&D)·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하는 중견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연내 1차 펀드 결성을 완료하고 투자를 시작할 예정이다. 미래에너지펀드와 기후기술펀드는 올 4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 지원 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조성된다. 2030년까지 각각 9조 원, 3조 원 규모로 결성된다.
은행들이 올해 대체투자 출자를 마무리 짓는 분위기에 블라인드펀드를 모집하고 있는 사모펀드 운용사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모펀드들은 블라인드펀드를 모을 때 연기금·공제회 등에서 대규모 출자를 받은 뒤 은행이나 캐피털사·증권사 등에서 매칭 자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 금융사들의 출자 여력이 줄면서 펀드 결성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중 가장 활발하게 출자해온 신한은행은 올해 직접 및 LP(출자자) 펀드 관련 투자 규모를 약 1조 원 수준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1조 5000억~2조 원까지 설정했던 점을 감안하면 대폭 낮춘 것이다.
문제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정책자금 조성이 추가로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캠코가 조성 중인 기업구조혁신펀드에도 은행들이 일부 출자금을 보태야 하는 상황이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펀드 출자를 받기 위해 은행들을 찾았다가 대부분 올해 출자 문을 닫았다는 답을 들었다”며 “펀드 모집 기한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답답한 것은 은행도 마찬가지다. 시중은행에서 출자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블라인드펀드뿐만 아니라 프로젝트펀드 출자를 받으려는 운용사들이 줄을 섰다”며 “성과를 내려면 좋은 자산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출자 여력이 없어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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