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2007년 1월, 베트남 4개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호치민으로 들어가 나짱(나트랑)과 후에를 거쳐 하노이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그때 나짱 캄란공항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이 문득 생각나 적어보려 한다.
호치민 떤선넛공항을 이륙한 지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비행기는 나짱 캄란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이라기보다 소도시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면 딱 좋을 만큼 작고 소박한 건물이었다. 나짱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 여행자였다. 그들은 미리 호텔 측에 픽업을 부탁했는지, 마중 나온 사람들로 공항 안이 북적댔다.
주변을 살펴보니 마중 나온 사람이 없는 팀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가방을 찾아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일어났다. 문을 지키고 있던 공항 직원이 우리를 제지하는 것이었다. 가방을 가리키며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야, 왜 못 나가게 하는 거야?”
“글쎄, 우리 가방에 무슨 문제가 있나?”
“혹시 우리 가방에 마약 같은 게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마….”
우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나가도 좋다는 처분이 내리기만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다른 여행자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공항 안에는 우리 가족만 남았다. 안 그래도 마중 나온 이가 없는 유일한 팀이라 쓸쓸했는데, 텅 빈 공항 안에 우리만 남고 보니 더욱 비감했다.
“What’s the problem?”(뭐가 문제입니까?)
내가 묻자, 그 직원은 베트남 말인지 영어인지 구별하기 힘든 말로 뭐라고 설명했다. 우리 가방에 무슨 표 딱지가 붙어 있지 않은 게 이유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가방에서 뗀 표 딱지를 보여주며 그걸 내놓으라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 가방에는 그게 붙어 있질 않았다.
떤선넛공항의 체크인 담당자가 실수로 우리 가방에만 안 붙였는지, 아니면 엉성하게 붙여 중간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없는 걸 내놓으라니 우리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우리가 몰래 떼어서 감춘 것도 아니고….
우리를 마냥 붙잡아 놓는다고 해서 없는 표 딱지가 생겨날 리도 없고, 다 떠난 자리에 달랑 하나 남은 가방의 주인이 우리라는 걸 의심할 필요도 없기 때문인지, 나중에는 여권을 확인하고 내보내 주었다.
이래저래 쓸쓸하고 씁쓸한 캄란공항 입성이었다.
나중에 그 직원이 내놓으라고 우겨대던 표 딱지를 탑승권에서 찾았을 때는 분통이 터졌다.
“아니, 가방에다 붙여야 하는 표 딱지를 왜 우리 것만 탑승권에다 붙여서 그 곤욕을 치르게 만든 거야? 캄란공항 직원도 그래. 날마다 하는 일이 그건데, 가방에 없으면 탑승권에 붙였나보다 생각하고 친절하게 대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리야 처음이라 몰랐다지만, 자기들은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닐 텐데, 그렇게 시치미 딱 떼고 무조건 가방에 안 붙어 있다고 트집 잡는 건 무슨 경우야?”
그 후 하노이 노이바이공항에서 우리랑 똑같은 일을 겪으며 쩔쩔매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건 단순한 착오나 실수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악취미인지도 몰라.’
붙이는 사람은 탑승권에다 붙이고, 검사하는 사람은 가방에 안 붙어 있다고 트집을 잡는 일이 같은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그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입국하는 사람의 가방에 표 딱지가 붙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경우를 다른 나라 공항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베트남은 특이했다.
혹시 지금도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고, 가방에 표 딱지가 붙어 있지 않아 난감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생긴다면 탑승권을 확인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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