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김현일 기자] 글로벌 철강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국산 저가 제품에 맞서 각국의 관세 장벽이 하나둘 세워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세워지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로 사업자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그리고 이들의 제품으로 2차 상품을 만드는 제강·압연업체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큰 데다, 제품별로 규제의 필요성 자체가 없는 경우도 존재하는 만큼 그리 간단히 관세 장벽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국내 시장에 반덤핑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자칫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중남미, 아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결정하거나 검토 중이다.
우선 미국은 중국산 철강 관세를 기존 7.5%에서 25%로 3배 인상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는 한편, 지난 10일 멕시코 수입 철강재 중 미국, 캐나다, 멕시코 외 지역에서 용융·주조된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며 우회 수입 제품에도 고강도 제재를 예고했다. 칠레의 경우 지난 4월 중국산 철강재에 최대 33.5%의 관세 부과를 결정했으며, 최근에는 대만(타이완) 역시 중국산 저가 철강에 대해 반덤핑 제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상가 또는 생산 가격보다 싸게 상품을 수출하는 중국의 철강재 ‘덤핑’(Dumping, 한꺼번에 쏟아버리는) 행위로부터 자국 업체를 보호하고자 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산 철강 해외 수출은 지난 2020년 5370만톤(t)으로 저점을 찍은 이후 △2021년 6690만톤 △2022년 6730만톤△2023년 9030만톤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수출 급증은 자국 내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건설 경기가 악화됨에 따라 철강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제품 생산량은 여전한데, 내수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중국이 남은 철강을 싼값에 세계 곳곳으로 밀어내며 재고를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중국산 저가 철강재 반덤핑 목소리 나오지만… 업체별 입장차 커
이에 국내에서도 중국 저가 철강재 유입에 따른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나, 이는 직접 철을 생산하는 고로 사업자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이를 가공해 사용하는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가격경쟁력에 보탬이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국내에 수입된 중국산 철강재는 472만7000톤(t)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과 2023년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이 각각 675만6000톤, 872만8000톤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남은 하반기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수입이 이뤄질 경우 지난해의 수입량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저가 철강재가 유입되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철광석을 원료로 철을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포스코·현대제철 등 고로 사업자들이다.
이들의 주력 상품 중 하나는 중국에서도 유입되는 양이 많은 ‘열연강판’인데, 쇳물을 굳혀 만든 철강 덩어리 ‘슬래브’를 고온·고압으로 가공해 두께를 얇게 만든 제품이다. 재가공해 냉연·도금·컬러강판 등 다양한 2차 강재의 소재로 폭 넓게 활용되는 ‘범용재’인데, 저렴하면서도 비슷한 성능을 내는 중국 제품들이 유입되며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량은 지난 2022년 142만1000톤, 2023년 179만톤, 2024년(1~6월) 92만2000톤 수준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재가 수요를) 많이 잡아먹고 있다. 한 마디로 시장 잠식 수준으로 영향력이 아주 크다”라며 “중국산 같은 경우 10년~20년 전만 하더라도 품질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싸더라도 잘 안 썼다. 아직 고가 제품의 경우 기술력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제는 후판이나 철근 같은 범용재의 경우 그냥 써도 상관없을 정도다. 여기에 인건비도 싸고, 가격도 국가에서 다 관리를 하니 20~30% 저렴해 경제성 면에서 게임이 안 된다. 아직 분명 문제가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 동국제강·세아제강·KG스틸 등 재압연을 통해 2차 강재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국산을 사용하는 한편, 중국산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이 시장에 유입될 경우 가격경쟁력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산과 중국산 사용 비중이 지정돼 있지는 않아 업체별 제품 포트폴리오에 따라 유동적으로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다만 최근에는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글로벌 규제가 심해진 탓에 수출용 제품에는 많이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고 설명한다.
한 압연 업체 관계자는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수출입에 대한 규제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저렴한 중국 제품을 당겨와서 많이 쓰려고 해도 안 된다”라며 “받아주는 국가가 받아줘야 가져와서 만들어서 팔지, 원산지까지 따지겠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쪽에게 어떻게 ‘우리 원가 싸게 만들어요, 봐줘요’라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결국 반덤핑은 ‘최후의 보루’… “업체가 경쟁력 키워야”
한 마디로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반덤핑 제소에 적극적인 반면, 제강업체들의 경우 이를 달가워하지 않아 철강업계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상충, 반덤핑 제소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현대제철의 경우 의견차가 존재하는 열연강판이 아닌, 후판에 우선적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른 철강업체 관계자는 “반덤핑은 국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인데, 국내 열연(강판) 시장에는 독과점 공급 체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재압연 업체들의 경우 원가 절감을 위해서는 오히려 공급처 다변화가 필요하다.
반덤핑을 하더라도 결국 독점 생산자가 국내 발생 수요를 다 가져갈 뿐, 국가 산업을 보호하는 결과가 아니게 되는 셈”이라며 “후판의 경우 생산자가 많으니 국가적인 관점에서 반덤핑이 필요할 수도 있고, 자국 산업 보호의 목적을 띨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열연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수출이 기반이 되는 한국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경우 미국 등 수입 중심 국가들의 반덤핑 규제는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그 규모가 크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 규제를 통해 외부 유입 물량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나, 공급자들 입장에서는 한국이 그 정도의 메리트를 갖고 있는 시장이 아님에도 반덤핑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될 경우 자칫 국가의 통상능력을 저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측의 대립 구도가 첨예한 만큼 결국 고로 사업자 입장에서는 꾸준히 저가 제품에 문제 제기를 통해 업계 전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중국이 우위를 점한 범용재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용 저장탱크, 해상풍력 장비 등 고부가 가치 상품 개발을 통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으로 보인다. 반덤핑 고려는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셈.
철강업계 내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어떤 제품만 사라고 강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저가 철강재가 무분별하게 퍼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협회나 정부 차원에서 자정적인 노력도 필요하고 그걸 유도하게끔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원산지 표시를 조금 더 엄격히 한다든가, 언론에서도 이를 자주 언급해 주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저가 제품) 사용 빈도가 감소할 듯하다.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업계 스스로 수익성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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