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은 특히 ‘나이트라이프'(nightlife)가 발달한 곳이다. 아침형인 내가 여행지에서 디너 크루즈를 타고, 재즈바를 즐기려다보니 기존 생체리듬을 살짝 조정해야 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좀 더 늦게까지 깨어 있기. 방콕 도심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어둡지만 화려하다. 바 한 쪽에 선 가수가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을 불러줬다. 좋아하는 노래다. “오늘 밤 당신은 아주 멋지군요~” 노랫말처럼 이곳에서 밤을 즐기는 모든 이들이 멋져 보인 순간. 즐기기에 멋져 보였던 거다. 나도 모처럼 밤을 즐겼다. 짜오프라야강 위로 휘황찬란하게 쏟아지는 조명을 봤고, 야외 풀에서 야간 수영을 했고, 밤 늦도록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이른 새벽 깨어 있기 좋아하는 평소의 나는 생산적 삶을 추구한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에 갇혀 있다. 그런 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달라서 의미 있는 며칠 밤이었다.
일상을 떠난 여행에선 다른 삶을 체험한다. 여행에서 얻는 큰 소득은 다른 삶들을 직접 보고 겪고 느껴보는 것이다. 여행에 앞서 설레고 여행하며 자유롭고 여행 후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잠시나마 다른 삶을 꿈꾸고 경험하고 결국 추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세상을 보다 또렷이 느끼게 된다. 낮만큼 밤도 아름답다. 생산적 루틴만큼이나 비생산적 유희도 의미 있다. 유명의 순간을 기대할지라도 무명의 시간에 홀가분하다. 익숙함만큼 새로움도 소중하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이런 게 세상사의 진면목이다.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다. 그래서 낮과 밤은 공존한다. 늘 그렇다. 낮은 밤의 의미가, 밤은 낮의 의미가 된다. 당연한 사실을 여행지에서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나는 아무래도 종종 다른 한 쪽을 놓치는 것 같다.
여행 중에는 하루에도 많은 일이 일어난다. 덕분에 며칠도 몇 주쯤 됐던 것처럼 길게 회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오래 기억된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 칠레 출신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이 제목을 붙인 시에서 “모든 것을 위해 건배하자”고 했다. 추락하는 것과 꽃피는 것, 어제와 오늘, 지나간 날들과 다가올 모든 날들을 가리지 말고 축하하자는 것이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낮뿐 아니라 밤을 위해서도 건배 / 영혼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낮뿐 아니라 밤을, 영혼의 사계절을 함께 찬양해본다. 많은 건배를 나눴던 며칠 밤을 간직하면서.
조민진 작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