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은 사전청약③] 공개입찰로 시행사가 비싸게 매입한 공공택지, 분양가상한제·공사비 상승으로 사업성 저하
[땅집고] “사전청약 부지는 분양가상한제로 분양 수익에 한계가 있는 곳인데도 시행사는 비싸게 땅을 사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다 공사비가 오르니 사전청약을 취소한 것이다.”
올해 들어 민간분양 사전청약은 전국 4개 지역, 5개 단지에서 취소됐다. 1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들 단지 사전청약에 배정된 1510가구 중 사업 취소 시점까지 당첨자 지위를 유지한 피해자 규모는 615명에 달한다. 지난 5월 사전청약 제도가 폐지됐으나, 피해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민간분양 사전청약은 땅은 비싸게 사야하는데 분양가에는 제한이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제도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당첨이 취소된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의 대책은 없고, 법적 대응을 하기에는 꼼꼼히 따져야할 것이 많다.
■ 비싸게 산 땅에 ‘분상제’ 적용, “시장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제도”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전청약을 구조적 문제가 있는 제도로 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택지를 공개입찰로 민간에 매각해 진행하는 사업이지만,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사업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LH가 경쟁을 붙여 비싸게 땅을 사도록 했지만, 분양가를 제한해 제대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사전청약이 취소된 파주 운정3지구 B3,4블록 시행사 DS네트웍스는 사업 부지를 입찰시작가 2511억원보다 2000억원 비싼 4550억원에 매입했다. 한 당첨자는 “분양가상한제로 분양 수익에 한계가 있는 곳인데도 비싸게 땅을 사서 사업을 추진하다가 공사비가 오르니 사전청약을 취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분양가상한제 단지는 공사비 인상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사업성이 낮아진다. 민간 시행사로서는 사업을 연기하고 취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A건설사 관계자는 “공공 사전청약은 LH에서 직접 시행하다보니 사업이 지연되더라도 무산될 가능성이 낮다”며 “민간 사전청약은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 공사비는 계속 상승하는데 분양가를 올리지 못하니 시행사가 시공사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장은 “시행사들이 사전청약을 취소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돈이 없어서’다”라며 “사전청약 없이 본청약을 빨리하면 계약금이 들어와 은행 이자를 지불해 착공하는 데 어려움이 덜했을 것이다. 집값 상승기의 정치적 해결책일뿐 시장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됐던 제도”라고 지적했다.
■ 정부는 ‘나몰라라’, 법적 대응은 최후의 수단
정부는 사후 대책을 마련하는 데 소극적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기에 재검토해보겠다. 다만 구제하겠다는 전제를 깐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사전청약 취소 피해자들은 LH에 반환된 부지에서 사업을 재개하면 당첨 지위를 유지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국토부는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도 다른 단지에 청약할 수 있게 하는 등 미봉책만 내놓았을 뿐이다.
업계에서는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렬 소장은 “분양은 민간에서 했지만, 일종의 공공청약이라 봐야 한다”며 “같은 사업장이라면 당첨권을 승계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구제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법적 대응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계약서 조항과 문구, 입주자 모집 공고 내용 등 사업장에 따라 취소 과실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크다. 법무법인 명륜의 양희철 변호사는 땅집고와 통화에서 “사전청약 계약에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지 해석의 여지가 많다”며 “시행사마다 계약서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계약서와 입주자 모집 공고 등 내용이 다르다면 법원에서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해석할지 문제”라고 설명했다.
당첨자들은 일단 시행사에 대한 법적 대응을 후순위로 미뤘다. 사전공급계약서 제8조 7항에 “설계변경, 소송, 지구단위계획변경, 문화재발굴, 사업지연 등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사업취소 혹은 지연될 수 있다”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양 변호사는 사업 취소의 ‘구체적인 사유’를 검토해 법적 대응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업 취소 사유를 공사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문제로 추정할 수 있는데, 문화재 발굴, 정책, 법령 개정 등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며 “수익성이 낮아진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우 땅집고 기자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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