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과 관련한 금융투자업계의 지적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가장 많이 비판받는 지점은 순자산 4000억원에 적자를 기록 중인 두산로보틱스와 순자산 6조원에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두산밥캣이 시가총액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유사한 기업가치로 주식을 교환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인데, 이외에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에 대해서도 일부 전문가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두산은 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로 쪼갠 뒤, 투자회사를 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에너빌리티는 상장사인데, 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은 분할로 인해 ‘비상장사’가 된다. 그리고 비상장사라는 이유로 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이 평가절하돼 로보틱스와 합병하게 됐다는 것이 일각의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이같은 상장사-비상장사 합병은 기업들의 ‘꼼수’가 많아 금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마련하고 있던 영역이기도 하다. 금융위가 규제하려고 한 지점을 두산이 도입 직전 활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기업 합병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을 준비 중이다. 현재 법제처 등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인 상태로,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올해 3분기 중으로 작업을 마치는 게 금융위 내부 목표다.
이번에 금융위가 들여다보는 지점은 상장사와 비상장사간 합병 때의 합병가액 산정이다. 사실 대부분 투자자들은 상장사 간 합병에 문제제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래도 상장사는 최소 주가가 있어 상장사-비상장사 합병과 비교하면 잡음이 덜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2022년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 때 동원그룹이 합병가액을 재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5월 기업 인수합병(M&A)을 선진화하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합병가액이 어느 한 기업에 불리하게 책정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때 합병가액이 적절한지 회계법인·신용평가회사 등 제3의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외부평가기관에 대한 행위 규율을 마련한 게 개선안의 골자다.
또 합병가액을 산정한 외부평가기관은 기업의 합병가액 산정 과정에 관여할 수 없게 했다. 두산처럼 계열사 간 합병에는 한 가지 의무가 더 추가된다. 외부평가기관을 선정할 때 감사위원회의 의결이나 감사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선 조치는 일러야 9월쯤에나 시행될 예정이다. 구조 개편을 서두른 덕에 두산은 강화된 규제를 피한 것이다.
◇ 비상장사인 에너빌리티 분할법인, 적정가치 인정받았나
이번 두산 지배구조 개편에서 등장하는 합병 및 교환 비율은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 신설법인 간 1대 0.12, ▲밥캣과 로보틱스 간 1대 0.63으로 2건이다.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 신설법인 간 합병 비율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는 두산이 비상장사 가치 평가의 빈틈을 파고들었다고 의심한다. 상장사 간 합병은 주가가 기준이나, 비상장사는 상장돼 있지 않으니 주가가 없어 합병 비율을 산출할 때 본질가치가 기준이라서다.
비상장사의 합병가액, 즉 본질가치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대 1.5로 가중평균해 정해진다. 수익가치는 미래에 해당 회사가 얼마나 벌어들일지를 추정한 것으로, 예측의 영역이라 비상장사의 가치는 의도적으로 쪼그라들거나 부풀려질 여지가 있다.
로보틱스 합병가액은 기준주가 8만114원이 그대로 정해졌다. 그리고 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은 밥캣 지분만 가지고 있는 페이퍼컴퍼니인데, 1만221원으로 정해졌다.
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은 밥캣 지분 46%를 가지고 있는데, 지분가치를 온전히 감안하면 에너빌리티 신설법인 합병가액은 최소 2만원 이상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 지적이 맞다면, 에너빌리티 주주들은 손해다.
반대 의견도 있다. 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은 일종의 중간지주회사이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밥캣 가치를 어느 정도 할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지주회사는 자회사 가치를 30~50% 할인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빌리티 신설법인의 기업가치가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같은 의사 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M&A 전문 회계사는 “에너빌리티 신설법인 기업가치 측정과 관련한 부분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분할 합병과 주식 교환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각사 주주 입장에서 당연히 반발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밥캣-로보틱스 주식 교환, 이사 충실 의무가 대안될 수 있나
기준주가가 있는 밥캣과 로보틱스 간인 교환 비율에 대해서도 밥캣 주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밥캣이 상장폐지되고 밥캣 주주들은 로보틱스 주식을 받게 되는데, 자산 규모가 크게 차이나는 데도 주가만을 기준으로 교환 비율이 책정된 건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관련 기사☞자산 4000억 적자 회사가 6조 회사만큼 비싸다고?… 또 논란되는 주가 기준 합병 비율)
일각에서는 이번 두산의 구조 개편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도입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강조한다.
현재 상법상 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은 회사뿐이다. 이사의 결정으로 지배 주주는 이익을 보고, 다수의 일반 주주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법원에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금감원을 중심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돼야 한다는 논의가 번지는 것이다. 우리 법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일일이 규율하기는 어렵고 느리니, 다수의 주주와 배치되는 판단을 한 이사에겐 소송의 근거를 마련하자는 얘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현재 상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본 거래와 관련한 주주 가치 보호 실패로 이어지는 현상을 초래했다”며 “해외 투자자는 물론 국내 개인 투자자도 이 현상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지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을 지낸 김규식 변호사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보고 밥캣에 투자한 주주들이 많을 텐데, 이런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성장주인 로보틱스를 받게 된 것”이라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충돌할 때 이사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렸다면 일반 주주에게 이득이 되는 특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로보틱스와 밥캣의 합병으로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게으른 설명은 안 된다는 게 충실의무의 확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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