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배선영 기자] 미국 듀크 대학의 앨런 프란시스 교수는 “병원에서의 죽음보다 더 나쁜 죽음은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75%가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가운데, 프란시스 교수의 말은 ‘죽음의 질’을 재고하게 만든다.
이병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한국죽음준비교육원 원장)은 “웰다잉이란, 웰빙의 완성”이라며 “잘 죽는다는 것은 결국 잘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과연 어떤 방식의 죽음을 웰다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과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50대 이지현 씨(가명)는 3년 전 어머니와 이별했다.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는 진단 이후 6개월 가량 병원을 오가며 진료를 받았고 수술까지 받았으나 예후가 좋지 않았다. 결국 연명치료 외에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지현 씨는 어머니를 직접 모시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기꺼이 지현 씨의 뜻을 존중했다. 그렇게 지현 씨는 어머니의 숨이 멎기까지 수개월 24시간 함께 했다. 지현 씨는 어머니의 지난 인생을 정리하고 기억하는 것에 집중했다. 어머니의 지난 사진을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 사진을 모두 시기별로 정리 하였는데, 이 사진들은 나중에 장례식에서 가족 친지들과 함께 보며 고인을 추억하고 추모하는 것에 유용했다. 또 지현 씨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이를 일기장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딸로서 어머니의 마지막 삶을 차곡히 정리한 것은 훗날 어머니가 떠났을 때 큰 위안이 되었다.
# 50대 구미선 씨(가명)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아직 50대 초반에 불과했던 남편은 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러나 미선 씨 부부는 그 전부터 죽음에 대해 늘 논의하며 준비해왔다. 특히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리면 절대 연명치료를 하며 병원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로 약속했다. 남은 시간은 두 부부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여유롭게 삶의 마지막을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의 순간이 닥쳐오자 미선 씨의 마음은 흔들렸다. 남편에게 “마음을 바꿔도 된다. 치료를 받자”라고 말했으나, 남편의 뜻은 완강했다. 그 때부터 두 사람은 몸이 더 아파오기 전에 가고 싶었던 장소를 찾아다니고 해보고 싶던 것들을 함께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온전히 누렸다. 죽음의 순간은 다가왔을 때, 미선 씨는 남편의 몸을 끌어안고 숨이 멎는 순간까지 함께 나눴다.
지현 씨와 미선 씨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2022년 기준 국민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았다. 가장 보편적인 임종 장소가 병원인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맞는 죽음은 흔히 말하는 ‘웰다잉’, 즉 인간이 존엄과 평안을 유지하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과정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오죽하면 미국 듀크 대학의 앨런 프란시스 교수는 “병원에서의 죽음보다 더 나쁜 죽음은 없다”라고 까지 했다. 병원에서의 죽음이 의료 기술이나 기계적 절차에 집중돼 환자의 인간적 측면과 존엄성을 간과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 국내 병원에서는 가족들과 임종의 순간을 보낼 공간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1인실에서 임종의 순간을 보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통상 임종 직전에 이르러서야 처치실로 옮겨지고 보통 다인실에서 가림막을 친 뒤 사망에 이른다.
충분히 슬퍼하고 인사를 나눌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고인에게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가족에게도 상처로 남는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병원 등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 하는 법안은 계류 중이다. 프란시스 교수는 “가정이나 호스피스 같은 장소에서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장소가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선택권이 존중되며 이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과연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은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죽음의 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점차 확산되는 웰다잉 교육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웰다잉 교육의 핵심은 당사자가 지난 삶의 의미를 돌이키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죽음으로 이르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오랜기간 웰다잉 교육에 힘써온 이병찬 총장은 웰다잉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웰다잉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잘 살면 됩니다. 그리고 나를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삶의 행복한 마무리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 심도 있고 체계화된 자아 성찰이 필요합니다. 자아 성찰을 하게 되면 황폐화된 마음의 밭에 내재된 가치를 되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아름다운 생사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준비한 만큼, 준비된 만큼, 인생을 값지게 산 만큼, 웰다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으로 이르게 되는 과정 속에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또 죽음 당시의 순간이 평화롭고 의미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면 당사자에게도 또 남은 가족들에게도 그 죽음은 웰다잉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두 사례들의 주인공은 모두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고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남은 가족들은 고인이 죽음으로 향해가는 과정이 일종의 위안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죽음이 예고된 순간부터 지난 삶을 함께 정리했던 지현 씨는 어머니의 지난 인생을 함께 돌아보며 보내드린 일을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로 꼽았다. 남편과의 마지막 순간을 가치있게 보낸 미선 씨 역시 살아가면서 ‘죽음의 방식’에 대해 숱하게 나눈 대화들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죽음은 곧 살아감의 연속에 있다. 나의 가치있는 죽음을 위해, 지금의 삶부터 돌이켜보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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