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가 만난 지인의 얘기다. 100일이 안 된 아이를 키우는 지인은 이유식에만 한우를 조금씩 사용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호주산이나 미국산 소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한우 가격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냐고 묻자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한우 농가는 도맷값 폭락으로 울상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실제 한우 도매가격은 3년 전보다 40% 가까이 하락했다. 폭등한 사료값에 고금리 상황까지 더해져 소 1마리를 팔면 오히려 150만원 가까이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 지난 3일 한우 농민 1만2000명이 ‘한우법 제정’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한우를 비싼 가격에 마주해 공감하기 어렵다. 농민들의 외침도 공허하게 들린다.
정부는 농가가 원하는 한우법 제정이 아닌 ‘축산법 개정’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수많은 축산 품종 중에 한우에만 특혜를 줄 수 없기에 한우법 제정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한우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재의요구권 사용도 망설이지 않았다.
문제는 한우법 제정과 축산법 개정이 맞붙으면서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우 유통 과정은 생산자-우시장-공판장-중간 도매상-유통업체-소비자로 연결된다. 이로 인한 유통 비용은 전체 소비자 가격의 5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유통구조 개선은 농가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게 없다. 오히려 중간 인건비 등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한우는 ‘필요 이상으로 비싸다’는 인식을 바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한우법 제정 혹은 축산법 개정과 별개로 정부와 한우업계는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함께 발 맞출 필요가 있다. 호주 축산업의 구조가 이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호주는 사육부터 도축 가공 과정을 통합해 대형마트로 곧장 납품하는 간단한 구조다. 호주의 소고기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저렴한 이유 중 하나다.
이번 한우 가격 폭락 사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일시적인 복안은 한우 소비 촉진을 통한 가격 상승이다. 그릇된 진단과 처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에 대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본질적인 유통구조 개선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기존 온라인 도매시장 활성화 수준을 뛰어넘는 유통구조 전반의 체질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와 농가 모두 머리를 맞댈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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