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금융투자소득세 유예와 종합부동산세 개편 가능성 주장을 두고 진보 진영이 시끄럽습니다.
당대표 연임에 도전하는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종부세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금투세에 대해서도 “시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같은 발언이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의 반발을 가져온 겁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진 정책위의장은 이 전 대표가 금투세 유예를 시사한 데 대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전 대표가 대표로 취임하면 논의가 불가피하겠구나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종부세의 근본적 검토 필요성을 두고는 마찬가지로 “2023년도 귀속분 결정을 보니 크게 완화돼 있어서 더 논의할 필요가 없겠다는 공감대가 지도부 한쪽에서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8·18 전국당원대회에서 이 전 대표의 ‘대항마’를 자처하며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김두관 전 민주당 의원 측은 “종부세 근본적 재검토와 금투세 시행 유예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행위”라며 “서민과 중산층을 버리고 소수 부자만을 대변할 것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도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분이 종부세가 폐지될 경우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엄청나게 사라진다는 점을 모르고 계신다”며 “2022년 여야 합의로 종부세 공제액이 12억원으로 오르고, 공시가격도 현실화해 부담을 지는 사람 수가 대폭 줄었다. 종부세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면 지역은 완전히 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야권 진영의 반발이 거센 것은 이 전 대표의 발언들이 ‘부의 재분배’를 가치로 삼아온 민주당 정체성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 투자로 연간 5000만원 이상의 양도 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 20~25%를 양도소득세로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대원칙에 맞춰 도입된 증세 제도인데, 국내 주식의 경우 연간 5000만원 이상 양도 차익에 대해 과세표준 3억원 이하는 22%, 3억원 초과는 27.5%의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종부세는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주택과 토지 소유자에 대해 국세청이 별도로 누진세율을 적용해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조세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습니다.
둘 다 증세의 성격을 가진 정책이다 보니 전통적으로 보수 여당과 정부 측에서 ‘감세’ 혹은 ‘폐지’를 주장해 왔습니다. 이 전 대표의 출마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민주당도 ‘부자 감세’라며 금투세와 종부세 폐지 반대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 대표가 ‘실용 정치’를 강조하며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정치권에선 차기 대선 주자로서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한강 벨트’ 표심을 잡지 못해 패배했다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찾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급등하면서 2022년 기준 서울에서만 종부세를 낸 사람이 57만5081명에 달했는데, 여기에 ‘초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되면서 표심을 잃었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계층 구조 변화가 이뤄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준일 정치평론가는 지난달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민주당 지지자들이 옛날보다 부자들이 많다. 화이트칼라 고소득층의 민주당 지지가 국민의힘보다 더 많다는 여론조사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견인한 조국혁신당이 주택 가격이 비싼 곳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도 민주당 지지층의 또 다른 계층 구조 변화 근거로 제시됩니다.
서울 총선 비례대표 동별 득표율을 보면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이긴 곳은 양천구 목5동, 평창동, 잠실2동, 오륜동, 반포본동 같은 부촌입니다. 가장 득표 차가 큰 곳은 9.7%포인트까지도 납니다.
정연경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이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발표한 ‘이탈인가 항의인가?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투표 결정 요인’에서 나타난 조사도 비슷합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조국혁신당에 투표한 유권자는 월평균 가구소득이 400만~500만원인 응답자가 30%, 500만~600만원이라고 응답한 유권자는 26%였습니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500만원 안팎인 50대가 지지하는 정당이 조국혁신당인 셈입니다. 보고서는 이들이 ‘새로 유입된 유권자’가 아니라 ‘기존 민주당 지지자’라고 분석합니다.
즉, 이 전 대표는 다가오는 대선 승리를 위해 중산층과 ‘강남 좌파’의 마음을 두드리는 ‘우클릭'(정당 정책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단 금투세는 여야 논의 과정에서 ‘시행 유예’로 절충점을 찾되, 결국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입니다.
금투세는 문재인 전 정부 시절인 2020년 국회를 통과한 후 2023년 1월부터 도입 예정이었으나, 여야 합의를 거쳐 2025년 1월 시행으로 이미 2년 유예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추가로 유예하면 2026년부터 시행됩니다. 지방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2026년분 수익에 대해 2027년 금투세가 부과되는 구조를 감안하면 2027년 대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적절한 시행 타이밍을 찾지 못해 폐지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종부세는 폐지보단 완화 또는 개편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종부세를 없애면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는 부동산 교부세가 사라져 지방 재정에 큰 타격이 가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교부세는 종부세를 재원으로 활용합니다.
이 전 대표의 ‘우클릭’이 중도층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일각에선 ‘산토끼’를 잡으러 가다 ‘집토끼’를 놓치는 건 아닌지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금투세와 종부세 개편을 필두로 도마 위에 오른 민주당의 세제 개편 논쟁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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