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들이 헤드헌팅 업체로 변신에 나섰다. 대형 VC들이 인적자원(HR) 전문가 내부 채용을 시작했고, 상당수 VC도 채용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을 돈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로, HR 테크 기업이 VC로 전환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16일 VC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VC로 손꼽히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는 최근 그로스파트너본부 주도로 HR 매니저 신규 채용을 시작했다. 그로스파트너본부는 피투자기업(포트폴리오사) 성장 지원 조직으로 사업개발과 법무, 홍보 외 HR로 지원 영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을 넘어 지속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 그로스파트너본부를 설립했다”면서 “HR 매니저는 포트폴리오사의 주요 인력 채용 지원, 조직문화·인사제도 수립 지원 등의 업무를 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당근(당근마켓)을 초기에 발굴한 VC 알토스벤처스도 HR 담당자 채용에 나섰다. HR 전담이 아닌 심사역 채용이지만, 공고에서 ‘채용, 각종 연결 등 (포트폴리오) 회사의 성장을 돕는 일’로 업무 영역을 명시했다.
VC가 ‘사람’을 포트폴리오사 관리 핵심에 올렸다는 분석이다. 스타트업 대부분이 인재 확보를 스타트업 운영의 난제로 꼽으면서다. 실제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작년 창업자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운영 관련 어려움에는 투자와 자금 확보에 이어 조직·인사관리가 올랐다.
일각에선 VC가 스타트업 성장을 이끄는 사람의 힘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스타트업으로서는 연결 및 영입이 쉽지 않은 회계법인 출신, 컨설팅 회사 출신을 VC가 직접 영입해 배치, 스타트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령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메이크스타는 지난 2018년 시리즈A 투자유치 이후 VC와 삼일회계법인 출신의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컨설팅법인 베인앤컴퍼니 출신의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잇따라 영입하며 재무구조와 사업전략을 개선, 2021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VC들은 그동안 투자 후 해당 스타트업의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의 경영 참여를 택했는데 이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면서 “믿을만한 인재풀을 구축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전략으로 확장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VC들의 HR 전문가 채용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저금리로 비롯된 벤처투자 활황 시절 받은 투자금으로 공격적인 확장에 나섰던 스타트업 상당수가 고금리 시대를 맞아 몸집 축소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HR 수요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HR을 핵심으로 내세운 VC마저 등장했다. HR 테크 기업으로 유명한 원티드랩이 대표적이다. 원티드랩은 이달 벤처투자 자회사 원티드랩파트너스를 설립했다. 회사는 HR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인사제도 수립 및 인재 채용 지원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스타트업이 밀집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VC의 스타트업 인재 지원이 일찌감치 시작됐다. 특히 스웨트에쿼티벤처스는 메타, 아마존, 링크드인 등 유명 벤처기업에서 채용담당자, 기술책임자, 마케팅 등을 맡았던 전문가를 구성해 포트폴리오사에 파견하는 방식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투자 후 진행하는 합병 후 통합 관리 전략까진 아니어도 VC 역시 그와 비슷한 형태의 투자 후 성장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미 국내의 상당수 VC가 HR 담당자 채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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