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 서적부터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대통령 추천하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
추천 도서 목록에 담긴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여름 휴가철마다 피서지에서 읽으면 좋을 책들을 공개했다. 이 같은 관행은 문민정부 이후 자리 잡았다. 대통령들의 추천 도서는 공개 즉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침체한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5일 도서ㆍ출판계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21세기 예측’,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 ‘동아시아의 전통과 변용’, ‘미래의 결단’,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 등을 여름 휴가철에 읽었다.
오랜 권위주의 군사정권을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 전 대통령은 ‘깨끗한 정부’, ‘튼튼한 경제’, ‘건강한 사회’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이 같은 가치를 실현할 방안이 담긴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피터 드러커의 ‘미래의 결단’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대통령이 지켜야 할 규칙, 정부 재창조, 새로운 조직사회 등의 키워드를 담고 있다. 신(新)한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김 전 대통령의 여망이 이 책에 담긴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 정치, 사회 서적을 비롯해 ‘해리포터’ 시리즈 등 판타지 문학을 여름 휴가철에 읽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의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는 사진 에세이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이 책은 인간의 오래된 감정인 ‘우울함’을 동물 사진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발굴하며 ‘동물 보호’의 가치를 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감명 깊게 읽은 책의 구절을 참모 회의 때 수시로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주 5일 트랜드’ 등을 여름 휴가철에 읽었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구조, 변화를 다룬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열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름 휴가를 떠나기 전 청와대 참모들에게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쓴 책 ‘넛지’를 선물했다. 이 책은 ‘선택 설계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전한다. 실용의 가치를 강조했던 이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조응하는 면이 있다. 그의 추천 후 국내에서만 40만 권 넘게 팔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여름 휴가철에 읽은 뒤 참모들에게 추천했다. 저자는 한국이 시대착오적인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당당한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수시로 책을 추천했다. 그가 추천한 책들은 항상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는데, 이로 인해 ‘문프셀러(프레지던트 문재인의 베스트셀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문 전 대통령은 ‘소년이 온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국수’ 등 한국 근현대사와 북한에 관한 책들을 여름 휴가철에 읽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집권 후 한 번도 여름 휴가철 독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독서’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한 출판 관계자는 “명시적으로는 책 읽는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면서 공부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향후 정국 운영 방향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추천 도서 목록을 공개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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