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의 윤곽이 드러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사업성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이미 추진 중인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공사비 갈등이 불거지거나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해 조합 설립 취소를 밟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간사업에 무리하게 나서면서 주민들을 부추기는 데만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특히 1기 신도시 중 사업성 규모가 큰 분당 정도만 사업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분당재건축특별법’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내 최고령 아파트 단지인 백송마을 5단지를 찾아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정부가 사업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 여러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루빨리 추진될 수 있게 하겠다”라고 거듭 조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같은날 두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1기 신도시를 포함한 노후계획도시 재정비를 임기 내 착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22년 1월, 1기 신도시 5곳(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에 주택 10만호를 공급하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경기도-1기 신도시-한국토지주택공사(LH) 단체장 간담회를 열고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규모와 선정방식 및 선정기준을 정했다. 국회에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2023년 12월 26일)한지 불과 6개월 만에 선도지구의 윤곽이 나온 셈이다.
선도지구는 특별법에 따라 노후계획도시 중 가장 먼저 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선정기준을 보면 주민동의 여부가 100점 배점 중 60점이나 차지해 주민동의율이 높아야 선도지구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선도지구의 규모는 전체 정비대상 주택물량의 10~15% 수준으로 2만6000여호 남짓한 물량이 연내 선정될 계획이다. 모두 1기 신도시로 성남 분당 8000호, 고양 일산 6000호, 안양 평촌 4000호, 부천 중동 4000호, 군포 산본 4000호이며 신도시별로 1~2개 구역이 추가될 수 있다.
선도지구를 준비하는 아파트 단지들은 각자 주민동의율을 올리는데 고심하고 있다. 공모에 접수하려면 구역 내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50% 이상 동의와 단지별 토지등소유자의 5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주민동의율이 50%면 60점 배점 중 10점을 받으며 만점을 받으려면 95%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
치솟는 공사비에 기존 정비사업도 고전하는데
정부가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는 모습과 별개로 사업 자체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정비사업의 수익성에 의문부호가 달렸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지난 3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5로 5년 전인 2019년 3월 116.06과 비교해 33.4% 상승했다. 2020년 3월 118.50이었던 주거용건물 건설공사비지수는 2022년 3월 141.88로 오르더니 2024년 3월 154.09를 기록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와 생산자물가지수, 대한건설협회의 공사부문 시중노임 자료 등을 통해 재료, 노무, 장비 등 직접공사비를 산출한 지수다. 지난 3월 지수는 ‘2015년=100’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공사비 부담이 늘어남에 따라 수도권 내 추진 중인 정비사업들은 공사비 인상을 두고 갈등을 빚거나 수주에 나선 건설사가 없어 시공사를 구하지 못한 사업장이 늘고 있다. 실제 경기도 광명시, 의정부시, 화성시 등에서는 조합 설립인가 취소 절차를 밟는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1기 신도시 선도지구 공모 신청서는 오는 9월 23일부터 27일까지다. 공모지침을 공모한 이후 3개월 안에 공모 신청서를 준비해야 한다. 선도지구를 희망하는 주민들은 우선 사업성에 대한 세세한 검토없이 일단 신청부터 해야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노후신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사업성은 아직 미지수다. 지금 주민들의 의중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주민동의 사항에 60점을 배점하게 됐다”라며 “사업성을 검토하려면 기준 용적률, 공공기여 기준 등이 나와야 하는데 이제 조례로 정해야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부의 의지가 강한 편이라 지자체들도 어렵게 일을 하고 있다. 국토부에서 발표한 사항이기에 최대한 협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는 지난 5일 1기 신도시 선도지구 공모 추진에 따라 선도 예정지구 5곳(17.28㎢)을 연말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해당 지역의 토지(주거용 제외)를 거래하려면 관할시장의 허가를 받아 매매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는 개발사업 추진에 따른 상가 쪼개기 등 투기적 거래를 차단하려는 조치이다.
그러나 분당을 제외하면 1기 신도시들의 부동산시장 분위기는 예상과는 달리 들뜨지 않는 모습니다. 부동산시장 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비사업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보니 수요가 집중되지 않고 있다.
직접 중동신도시의 한 통합재건축단지를 대상으로 사업성을 분석한 하나감정법인 오학우 평가사는 “현재시점을 기준으로 개발이익을 계산해보니 기존 아파트 가격의 70% 수준이었다”라며 “100%를 넘어야 사업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조합원 분양에서 평형이 기존 세대보다 커지면 그 가격도 지불해야 하는데 충당이 될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사업성 평가시 기준을 잡은 공사비는 3.3㎡당 800만원이다. 그는 “몇년 뒤에 착공할텐데 미래에 공사비가 얼마나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한 공사비”라며 “만약 고급자재를 쓴다면 더 나올 수 있다. 일반적인 공사로 보고 3.3㎡당 800만원을 책정했다”고 부연했다.
오 평가사는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의 설계를 감안하면 대부분 용적률 400%를 넘지 못하고 350~380%로 예상된다. 용적률을 높여 준다해도 공공기여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성이 부족한 이유는 공사비에 있다. 더 많은 단지를 통합하면 공사면적을 늘려 공사비 인상을 완화할 수 있다”면서도 “각 단지마다 사정이 다르니 무작정 통합을 많이 할 수는 없고 단순 합산으로 계산할 수도 없다. 수익성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뉴타운처럼 실패 속출할 수도…“분당만 하는 사업 된다”
사업성이 확실하지 않다면 주민들에게는 개발계획 수립에서 완공 뒤 입주까지 긴 사업기간과 얼마나 내야할지 모를 미래의 분담금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2000년대에 시작한 ‘뉴타운 사업’처럼 적잖은 사업장이 시간만 흘러가고 실제 사업은 진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뉴타운사업에서 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가 나중에 해제된 지역을 보면 피해가 적잖다. 지역주민간 갈등이 심하고 그동안 관리가 안됐기에 슬럼화가 된다”라며 “사업성이 부족한 곳마저 뉴타운에 포함했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럴듯한 구상부터 발표해서 집값만 올리는 방식은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사회에 부담을 지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주택가격이 이미 올라갈만큼 올랐고 주택 보급률은 지금이 더 높다. 인구도 예전처럼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1기 신도시는 뉴타운에 비해 여러 여건이 더 안 좋다”고 내다봤다. 이어 “관성대로 막연하게 경제적 이익이 남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권이 주민들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오히려 막연하게 부추기고 있으니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에 대해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수립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라는 시간표를 세워두고 있다. 정부가 나서 민간사업의 시간표를 발표하는 장면을 두고는 “매우 기만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커넥티드그라운드 채상욱 대표는 “정부가 제시한 시간표처럼 짧은 시간에 완료한 정비사업은 본 적이 없다. 2027년 착공이라는데 어떻게 3년 안에 이주를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경기지역에 주택공급을 하겠다는 방향은 맞지만 정비사업은 민간조합이 주체다. 주택공급이 급하다면 정부는 우선 3기 신도시부터 열심히 공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채 대표는 “우리나라에 1980년대에 준공한 아파트만 120만채에 달한다. 그런데 80년대 준공한 아파트를 건너뛰고 90년대에 지은 신도시부터 정비사업을 하겠다고 한다”라며 “대통령 공약이니까 하는 것이지 정비사업의 필요성이 있어 추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법이 등장했을 때부터 ‘분당재건축특별법’이 별명이지 않았냐. 분당만 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