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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20) 예리한 칼로 대나무 쪼개듯 하라 – 영인이해(迎刃而解)

아주경제 조회수  

유재혁 에세이스트
[유재혁 에세이스트]

제갈량과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치며 명성을 떨친 사마의가 위(魏) 나라의 실권을 잡았다. 기원 266년,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허수아비 황제 조환을 폐위시키고 제위에 오르며 국호를 진(晉)이라 정했다. 후한이 망한 후 위, 촉, 오로 삼분된 천하는 이로써 장강 이남의 오나라만 남았다.

기원 280년, 대장군 두예(杜預)가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진나라 군사들이 연전연승을 하면서 오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진나라 내부에서 속도조절론이 대두했다. 곧 강물이 범람할 시기가 다가오고 전염병 창궐의 우려도 있으니 겨울까지 기다리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두예가 단호히 말했다. “지금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와 같다(勢如破竹). 대나무는 첫 마디만 쪼개면 나머지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쉽사리 쪼개지는 법인데(迎刃而解)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는 두예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몰아쳐 오래지 않아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고사의 출전은 《진서(晉書)•두예전(杜預傳)》이며 성어 ‘세여파죽(勢如破竹)’과 ‘영인이해(迎刃而解)’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세여파죽은 무찌르고 쳐들어가는 기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것처럼 거침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대개 ‘파죽지세’라고 표현한다. 대나무를 일단 예리한 칼날로 첫 마디만 쪼개면 나머지는 저절로 쪼개진다는 의미의 영인이해는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나머지 문제들도 순조롭게 해결된다’라는 비유로 쓰임새가 확장되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윤석열 대통령의 앞길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약속해도,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발표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외국에 나가 펼치는 정상외교가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해도 별 감흥이 없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건 온통 무슨 무슨 특검이니 탄핵이니 하는 소리와 아귀다툼뿐이다. 총선 압승으로 기세가 오른 민주당의 폭주가 거침없다. 걸핏하면 특검이고 수틀리면 탄핵이다. 사유도 분명치 않은, 말 그대로  ‘묻지마 특검’, ‘카더라 탄핵’이다. 이 모두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탄하기 위한 민주당의 폭거요 꼼수라는 걸 국민들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여론은 반전되지 않고 대통령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대통령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던 공정과 상식은 실종되었고 무능과 불통, 부인과 측근만 감싸고 도는 모습에 국민은 실망했다. 실망은 반감으로 이어졌고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다. 명품백 논란을 키운 것도, 채 상병 사건을 키운 것도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고집이다. 김건희 여사에 관한 한 윤 대통령의 내로남불은 조국의 내로남불과 다를 바 없다. 4•10 총선 때 고양병 지역구에서 낙선한 김종혁 국민의힘 조직부총장이 총선 직후 티브이에 출연해 울분을 쏟아냈다. 이재명, 조국이 싫지만 윤 대통령 내외가 더 밉다는 말을 선거기간 내내 귀가 닳게 들었다면서. 대통령 내외를 티브이에서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기란 어렵지 않다. 취임 초에 비해 반 토막 난 국정 지지율과 여당의 총선 참패는 냉엄한 민심의 표출이다.

대통령의 신뢰 상실, 그로 인한 민심 이반의 근원이자 출발점은 김건희 여사다. 김건희 여사는 그동안 부적절한 처신과 국정 개입성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전력이 여러 차례 있다. 김 여사가 민주당의 꽃놀이패라는 정가의 뒷담화는 정설로 굳어졌다. 민주당이 머릿수의 힘을 믿고 벌이는 숱한 억지와 무리수들에 대한 합리적 반박은 김건희 여사 수사는 왜 하지 않느냐는 반격에 힘을 잃는다. 여권 내부에서는 진작부터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경고음이 울렸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김 여사 문제의 심각성을 진언하는 참모에게 격노했다는 소리만 들린다. ‘대통령 격노설’은 채 상병 사건에도 등장한다. 뻑하면 격노하는 윗사람 주변에는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아부꾼만 남게 된다. 윤 대통령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위징과 그런 위징을 자신의 그릇됨을 비추는 거울로 삼은 당태종의 고사를 되새겨 봐야 한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이 한창이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한동훈 후보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어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한 후보가 윤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보다는 윤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배신자 공방은 김건희 여사가 총선 전 한동훈 후보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읽씹(읽고도 무응답)’ 공방으로 옮겨갔고 김 여사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자해적 폭로전의 와중에 윤•한 갈등의 뿌리가 김 여사 문제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비전은 실종되고 비방만 난무하는 막장 전당대회에 파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래저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김건희 여사가 여권의 아킬레스건이요 뇌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선결과제는 김건희 리스크 제거가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꽃놀이패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더이상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말고, 김 여사 관련 각종 구설과 의혹에 대해 감싸기로 일관하지 말고, 공정과 상식에 부합되는 조치로 민심을 다독여야 정권의 살 길이 열린다. 예리한 칼로 대나무 첫마디를 쪼개면 나머지는 순조롭게 쪼개진다. 그 첫마디가 김건희 리스크다. 민주당은 이미 대통령 탄핵열차의 시동을 걸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시중에는 김건희 여사가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라는 이야기가 있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향해 칼을 들 수 있을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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