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김현일 기자] 프리미엄 배터리를 중심으로 고무적인 상승세를 기록 중인 삼성SDI도 ‘캐즘’(전기차 수요 감소 현상)은 역시 버거운 모양새다. 최근 몇 달간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남은 하반기에는 이러한 성장세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탓이다.
12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 1~5월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높은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성장률을 기록했다.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 리서치는 최근 자료를 통해 삼성SDI의 지난 1~5월 글로벌(중국 시장 제외)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성장률이 27.2%였다고 밝혔다. 점유율 2위 LG에너지솔루션의 5.9%, 3위 SK온의 5.0%를 크게 웃도는 성적이다.
비록 해당 기간 점유율은 10.7%(13.7GWh, 기가와트시)로 글로벌 4위에 머물렀으나, 3위 SK온과의 점유율 격차를 2.1%(2023년 동기)에서 0.2%까지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 전년 동기 대비 점유율도 1.1% 상승했는데, 상위 5개 브랜드(CATL·BYD·LG에너지솔루션·SK온 중에서는 유일하게 점유율 상승세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을 포함하더라도 고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CATL·BYD·LG에너지솔루션·SK온에 이어 5위에 자리한 삼성SDI는 국내 3사 중 가장 높은 26.8%의 성장률로 LG에너지솔루션(5.6%)과 SK온(4.2%)은 물론, BYD(21.1%)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전년 동기 대비 사용량이 2.9GWh(점유율 0.1%) 성장한 것은 물론, 상위 5개 회사 중 CATL과 함께 전년 동기 대비 상승세를 보인 유이한 브랜드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삼성SDI 성장세의 이유로 BMW, 폭스바겐그룹 등 고급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견고히 유지 중인 프리미엄 전략을 꼽았다. 아직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전반에서는 전기차 대중화가 덜 이뤄지긴 했으나, 유럽 등 선진 시장을 중심으로 점점 강화되는 환경규제 속에 최첨단·고성능 모빌리티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높아지며 삼성SDI의 프리미엄 배터리 판매도 탄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SNE 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는 BMW i4·iX·i7와 아우디 Q8 이-트론(e-Tron) 등이, 북미에서는 전기차 브랜드 리비안의 R1T·R1S 등의 모델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모델 대부분은 1억원에서 높게는 2억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전기차다.
‘핵심’ 유럽 시장 부진에… “기대했던 상고하저, 어려울 지도”
하지만 삼성SDI 역시 하반기 큰 상승세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생각보다 큰 하락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다. 장기화 중인 시장 침체는 물론, 핵심인 유럽 시장의 전기차 수요 둔화 폭이 커 실적을 담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연초에는 상저하고라고 해서 하반기 되면 좀 개선될 거라고 많이들 이야기했었는데, 정확히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 약간 금리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개선이 늦어지고 있어서 사실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라며 “연초에 전망했던 좋은 시그널들이 아직은 안 나오고 있고, 아직도 여전히 시장 자체가 침체돼 있어 올 한해는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전망했다.
증권가에서도 이러한 예상은 마찬가지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는 유럽 전기차 수요 둔화와 북미 고객사인 리비안의 판매 부진 영향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며 “2분기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4~5월 판매량을 감안할 때 전년 동기뿐만 아니라 전 분기에 비해서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전기차향 중대형 배터리 출하량이 전 분기 대비 약 3~4%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 역시 “경쟁사 대비 안정적인 배터리 부문 수익성, 아직 반영되지 않은 논-셀(non-Cell, 양극재, OLED 소재, 삼성디스플레이 등 자회사) 가치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시가 총액 40조원 이상까지 상승 여력 갖추고 있다고 판단한다”라면서도 “현시점은 향후 실적 추정치 하향 조정을 소화해야 하는 구간이라는 점에서 주가 상승 동력이 약하다고 판단한다”라고 전망했다.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올 하반기 미 대선 결과에 따른 배터리 보조금 감소 리스크도 존재한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미국은 현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기반해 태양광과 풍력발전, 자동차 배터리 등 첨단 제품 제조를 미국 현지에서 할 경우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간 미국 시설 확장이 빠르지 않았던 만큼 타사 대비 실적 중 AMPC 의존도가 낮긴 하나, 해당 정책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보조금이 하락할 경우 그간의 미국 투자가 자칫 무색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상승세는 삼성SDI 입장에서도 결코 반갑지 않은 소식임에 분명하다. 삼성SDI는 지난 1분기 467억원을 시작으로 AMPC 수혜를 보기 시작했으며, 내년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JV) 가동을 통해 혜택 금액이 크게 증가할 것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미 대선) 관련해 계속 추이를 보고 있긴 하나, 트럼프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갑자기 IRA를 취소하거나 이러진 못할 거다”라며 “미국 의회가 같이 동의해서 제정하기도 했고, 트럼프의 공화당 쪽 지역에도 친환경 전기차 관련 시설이 많이 늘어난 만큼 쉽게 IRA나 AMPC를 없애거나 이러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전했다.
신형 P6 배터리 & ESS 선전 기대… “LFP도 열심히 개발 중”
캐즘 시기를 버티기 위해 삼성SDI는 신제품의 전방위적 공급 확대는 물론, LG에너지솔루션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저장 장치(ESS) 시장에서의 선전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 확대를 목표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프리미엄 배터리 중심 전략은 유지할 예정이다.
이들은 우선 올 2분기부터 미주 지역에 공급되기 시작한 신형 P6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매출 향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 P6는 올해 1분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신형 하이니켈(니켈 함량 91%) 배터리로, 기존 P5보다 에너지밀도가 10%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 값비싼 코발트의 비중을 낮추고, 본디 60~70% 수준이었던 니켈 함량을 높여 에너지 밀도를 향상시킨 덕분에 전기차 1회 충전 주행거리와 출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ESS 수주를 통한 매출 확대 역시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 ESS는 잔여 에너지를 저장해 뒀다 사용할 수 있는 장치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이 활발한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미국 전력 기업 넥스트에라에너지에 1조원 규모의 ESS용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계약의 막바지 조율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기업 중 단일 기업과의 계약으론 최대 규모인 총 6.3GWh(기가와트시) 규모에 해당한다. 해당 배터리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셀을 적용해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셀을 압축적으로 설치해 에너지 밀도를 37% 높인 고성능 제품이다. 이외에도 삼성SDI는 최근 독일 ESS 제조업체 테스볼트에 ESS용 NCA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다만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ESS 시장 역시 저렴한 LFP 배터리를 활용한 중국의 점유율이 압도적인 만큼, 삼성SDI는 LFP 배터리 개발이 되는 대로 ESS용 제품을 출시해 해당 시장에서도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꾀한다는 입장이다. 본디 삼성SDI는 ESS용 배터리 시장의 강자로 꼽혔으나 LFP 배터리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밀려난 바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고객들의 값싼 배터리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어서 그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하이니켈이나 전고체 같은 프리미엄 제품 외에도 LFP, LMFP 등으로 다변화해 다양한 세그먼트에 대응할 수 있게끔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아직 프리미엄 중심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LFP가 2026년 양산될 예정인 만큼 향후 상품의 다변화를 진행할 예정일 뿐이다”라고 전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