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대대적인 사업 리밸런싱(재조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으로 자산총액 100조원대의 초대형 에너지·석유화학 기업의 탄생이 예고됐다.
장기간의 석유화학 부문 부진,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자금난 등으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한 SK이노베이션과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알짜 회사 SK E&S를 합병함으로 재무안정, 사업 동반성장 효과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묘수다.
다만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합병으로 주식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소액주주, SK E&S에 3조원을 투자한 사모펀드, SK E&S의 내부직원 등을 설득하는 숙제가 남아 있어 합병이 완료되기까지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오는 17일 이사회를 열고 두 회사의 합병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사회에서는 합병 자체에 대한 논의와 함께 합병 비율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합병회사의 자산총액은 106조원에 달하며 이는 재계 순위 8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12일 종가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은 10조3490억원으로, SK E&S가 KKR에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생할 당시 책정한 회사 가치 24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합병비율은 2대 1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가 합병에 성공하면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는 크게 안정화되게 된다. 올해 1분기 기준 SK이노베이션의 부채총계는 55조617억원이며, 이중 23조4907억원이 자회사 SK온의 부채다. 1년 내 만기가 오는 채무도 약 30조원에 달한다. 반면 SK E&S의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61.8%로 안정적이며, 보유 현금은 3조2125억원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에만 581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SK E&S는 1조331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재계는 두 회사의 합병은 이른바 ‘부채 물타기’ 효과를 내면서 SK이노베이션 부문의 재무구조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금난을 겪고 있는 SK온의 배터리 사업의 투자 자금조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SK그룹은 에너지 전문기업의 대형화와 석유화학 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재무안정, 사업시너지 등의 명분이 있어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SK E&S의 RCPS를 보유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을 설득하는 작업이 숙제다. SK E&S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KKR에 총 3조1350억원 규모의 RCPS를 발생했다.
SK E&S는 이를 자산으로 분류하고 했으나, 실상은 그림자 부채다. 합병이 결정될 경우 KKR일 투자금 중도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도시가스 자회를 넘겨줘야 할 가능성이 있다. KKR의 상환요구와 동시에 SK E&S의 자산 3조원의 부채 3조원으로 변하면서 SK이노베이션과 합병을 통해 꾀하는 재무구조 안정화도 무용지물이 된다.
소액주주의 반발도 피하기 힘들다. 합병이 성사된다면 SK이노베이션 지분가치는 SK E&S의 0.5배가 되며, SK E&S의 지분 90%를 가진 지주사 SK(주)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지분가치 하락과 의결권 약화라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SK E&S 내부직원들의 반발도 크다.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으로 성과급 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회사 익명게시판에는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게시글이 다수 게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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