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금리가 오르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 부동산의 상식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고금리인데도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치솟고 있다.
부동산 경제학의 상식을 역행, 한국처럼 고금리에도 집값이 치솟는 나라가 있다. 바로 폴란드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8% 이지만, 올 1분기 주택 가격이 전년 대비 18% 폭등했다. 작년 4분기에도 연간 13% 올랐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최대 30%까지 폭등했다. 유럽연합(EU) 내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고금리 영향으로 룩셈부르크(-14.4%), 독일(-7.1%), 핀란드(-4.4%)는 주택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현재 폴란드의 기준금리는 5.75%로, 2020년에는 기준금리가 1.5%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금리 상황이다. 그런데도 폴란드 집값이 폭등한 이유는 뭘까. 저금리 대출로 무주택자 누구나 쉽게 집을 살 수 있는 주택천국을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주택 포퓰리즘’이 폴란드를 주택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선거 앞두고 전격 도입된 한국식 저금리 대출
바로 작년 7월 도입한 2% 고정 금리의 ‘안전한 대출(Safe Credit)’이 집값 폭등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젊은 가족이 자기 집에서 삶을 시작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우리의 기본적 임무이다. 젊은이들이 주택 문제나 할부 금액이 아니라 교육, 일, 사생활, 직업 생활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선언하며 이 제도를 도입했다.
안전한 대출은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처음 10년 동안 2%의 고정 이자율을 유지하도록 보장했다. 1인 가구는 1억7500만원, 결혼한 부부는 2억1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폴란드의 고정금리 대출이 최고 8.46%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폴란드 정부는 시중 금리와 이자 차익은 재정으로 지원한다. 기금에 한도가 있다 보니 대출을 받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고 불과 7개월 만에 한도가 소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 파격적 제도는 작년 초 한국 정부가 도입한 특례보금자리론과 비슷하다. 작년 한 해 43조 원이 대출된 특례 보금자리론은 급락하는 집값을 반등시키는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폴란드는 한국의 청약저축 통장제도도 도입했다. 계좌는 13세에서 45세까지 개설할 수 있어 부모가 자녀를 위한 주택저축계좌 개설도 가능하다. 정부가 이자, 세금 등 각종 특혜를 준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주택 구입이 시장 금리 상승으로 인해 걱정의 시작이 아니라 삶의 안정과 안정을 의미하기를 바란다”면서 “우리는 모든 폴란드인이 주택 소유가 먼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전망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의의 정책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저금리 대출은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값에 불을 붙였다. 지난 1월 폴란드에서 발행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역사상 처음으로 100억 즐로티(23억 유로)를 넘어섰다. 전년 동기보다 대출이 5배나 늘었고, 체결된 계약 건수는 4배나 폭증했다. 당초 5만 건의 대출 신청을 예상했지만, 예상의 10배가 넘는 59.6만 건의 대출이 몰렸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초에 기금이 바닥나면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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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우파가 따로 없는 주택 포퓰리즘…다둥이 가족은 0% 대출
폴란드 현지언론에 따르면 2024년 1분기에 전임 정부의 ‘2% 대출’이 기금 부족으로 종료되면서 일부 폴란드 도시의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작년 10월 총선에서 집권한 우파 시민강령당은 전임 좌파 정부보다 더 강력한 지원책인 첫 내집 마련(Flat for a start) 대출제도를 4월 도입하면서 집값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새 제도는 신규 구매자의 모기지 이자율을 1.5%로 낮췄다. 1인 및 2인 가구 는 1.5%, 3인 가구는 1%, 4인 가구는 0.5%, 5인 가구는 0%의 이자를 낸다. 미혼인 경우 35세까지 가능하지만, 기혼인 경우 연령 제한이 없다, 가구원이 많은 대출금도 늘어난다. 한국에서 연초 도입한 신생아특례 대출과 유사하다.
무주택을 위한 대출확 대는 정당들의 무한 포퓰리즘 경쟁 탓이다. 당초 이 제도의 제안자는 작년 초 폴란드 최대 야당인 중도 정당 시민강령당(PO)이 9월 총선을 겨냥해 집권할 경우, 처음 주택을 구매하는 45세 미만의 무주택자에게 무이자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고, 임대인에게는 국가 보조금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시민강령당의 도날드 투스크 대표는 “주택을 상품이 아닌 권리로 만드는 정책”이라면서 “정직한 정부는 모든 폴란드 가정이 주택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제안한 제도였지만, 당시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도 총선이 바짝 다가오자 야당 정책을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주택공급 부족한 상황에서 특례 대출 제도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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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급이 충분한 상황이라면 집값 폭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최대 400만 호의 주택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폴란드인의 절반 이상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는 EU 내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더군다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규모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폴란드로 유입돼 주택 부족이 심화됐다.
아무리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줘도 집값이 폭등하면서 저금리 대출이 무의미해진다. 정부의 이자 보조금이 건설업체나 다주택자에게 흘러들어간다. 저금리 대출정책이 대도시 지역의 개발업자들을 부유하게 하고 전국적인 가격 상승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주택난만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속가능한 정책도 아니다. 정부 재정으로 무한정 이자를 지원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폴란드 정부의 정책보다 앞서 도입된 한국의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 대출이 무주택자를 돕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택공급이 감소한 상황에서 저금리 특례대출은 수요를 자극, 집값이 치솟으면 결국 더 많은 무주택자를 절망시킬 뿐이다. 꿈의 주택정책은 없다./차학봉 땅집고 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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