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강남스타일~~ 오오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2012년 7월15일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발매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인이 외국인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물어보던 ‘두 유 노우 김치?'(너 김치 아니?)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너 강남스타일 아니?)로 대체됐다. 양손을 모으고 다리를 튕기는 ‘말춤’에 팝의 레전드 마돈나까지 빠져들 정도였다.
싸이의 6번째 정규 앨범 ‘싸이6甲 Part 1’의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은 중독성 강한 음색과 코믹한 말춤에 재치 넘치는 뮤직비디오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삼박자를 갖춘 노래였다. 특히 뮤직비디오에는 여러 유명인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리틀싸이’로 불린 황민우 군부터 방송인 유재석은 노란 촌티 양복에 노란 축구화 복장으로 등장해 싸이와 댄스배틀을 펼친다. 노홍철은 간만에 저질 댄스를 선보이고 가수 현아는 지하철에서 봉춤을 춘다.
한국어 노래임에도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공개된 지 10일 만에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억뷰를 돌파했고 약 한 달 만에 CNN등 외신에서도 주목하는 핫한 노래가 됐다. 싸이는 2012년 9월 빌보드 ‘핫 100’에 64위로 진입하며 역대 한국 가수 가운데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이전 빌보드 ‘핫 100’ 최고 순위는 원더걸스의 ‘노바디’ 영어 버전이었다. ‘강남스타일’이 순위를 제치며 한국어로 된 진짜 K팝이 빌보드에서 역사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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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처럼 보였던 美시장?… 싸이, 음악 시장 판도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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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는 해외 유명 뮤지션들과 음악업계 그리고 토크쇼로부터 잇따라 러브콜을 받은 사실상 첫 K팝 가수로 통한다. 강남스타일 신드롬에 싸이는 앨범 발매 한 달 뒤인 2012년 8월14일 미국으로 출국해 글로벌 활동을 이어나갔다. 미국 NBC 인기 토크쇼 ‘엘렌 드제너러스 쇼’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등에 출연했고 같은 해 9월엔 VIP 자격으로 MTV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31일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새해맞이 공연에 ‘무한도전’ 출연진과 함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외에도 영국,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했다.
이 곡으로 싸이는 당시 K팝 가수들에게 ‘마의 장벽’으로 여겨지던 미국 빌보드의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단숨에 2위를 차지했다. 또 유튜브 창사 일래 단일 영상으로는 처음으로 조회수 10억건을 넘기며 싸이를 일명 ‘국제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래퍼 스눕독은 싸이의 곡 ‘행오버’에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싸이는 저스틴 비버 소속사와의 에이전트 계약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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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K팝 한류의 주된 촉매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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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은 K팝 등 한류 콘텐츠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곡이다.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K팝은 주류 대중음악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따르면 ‘강남스타일’의 공개 이후 1년 만에 K팝 관련 콘텐츠 조회 수가 3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스타일’ 발표 10주년을 맞은 지난 2022년 유튜브는”싸이는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 팬들과 교감하고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기록적인 업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등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가 지닌 막대한 잠재력을 잘 보여줬다”고 평했다.
미국 CNN 또한 “이 곡의 성공은 최근 한국 문화의 전 세계적 확산을 의미하는 용어인 일명 ‘한류’의 주된 촉매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으로 대표되는 K팝의 눈부신 성공 역시 싸이의 이런 발자취를 따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남스타일의 대히트가 없었다면 BTS도, 블랙핑크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싸이는 “‘강남스타일’ 이후에도 자신의 소명은 변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재미있는 음악과 댄스를 만들어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내 소망”이라며 “10년 전에도 똑같은 마음이었고 20년 후에도 역시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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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감성→ A급 무대로… 선구자 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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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1집 ‘싸이 프롬 더 싸이코 월드’로 데뷔한 싸이는 독특한 콘셉트의 타이틀곡 ‘새’로 단숨에 코믹 엽기 가수로 떠올랐다. 팔에 깃털을 붙인 채 새춤을 추고 땀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엽기가수’하면 싸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대중에게 확실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응원전에 참가해 열정과 ‘끼’를 분출하는 모습이 뉴스를 타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그해 9월 내놓은 3집 ‘마이’의 수록곡 ‘챔피언’ ‘낙원’이 크게 히트한 것도 싸이의 인기에 한몫했다. 특히 응원가 분위기를 풍기는 ‘챔피언’으로 퍼포먼스형 가수로 거듭났다. 이후 각종 행사와 단독콘서트에 연달아 출연하며 공연 전문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대학 축제와 콘서트에서도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과 대표곡을 자주 부르는 싸이는 선배 세대와 K팝 아이돌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싸이가 10년 전 ‘강남스타일’로 팝의 변방에서 쏘아 올린 불씨는 현대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K팝의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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