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종합금융 대표로 취임한 3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5 플러스(+) 1이 왔다′는 글이 올라왔다. 당시 경영기획본부장, 인사본부장 등을 외부에서 데려왔는데 저를 비롯한 외부 인력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저항감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임원들한테 직원들을 만날 때 꼭 자기소개를 ‘자세히’ 하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이른바 ‘낙하산’이 아니고 증권업계에서 어떻게 잔뼈가 굵었는지 알리고, 업무 노하우(비결)를 아낌없이 공유하며 밀착 소통을 하라고 했다.
최근 증권가의 주목을 받는 이슈를 하나 꼽자면 다음 달 출범하는 우리금융지주 산하의 우리투자증권을 들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해 그룹 내에서 여신 등의 사업을 하는 우리종합금융과 합병시켜 10년 만에 우리투자증권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투자증권은 가장 먼저 과거 증권업계 1위였던 대우증권 출신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투자증권 초대 대표로 낙점된 남기천(60) 우리종합금융 대표 역시 대우증권 출신이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TP타워(옛 사학연금회관)에서 만난 남 사장은 자기소개부터 남달랐다. 보통 한두 줄로 끝나지만, 남 사장은 “직원들과 미팅할 때 먼저 내 소개부터 하고 시작한다”면서 1989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대우증권에서 런던법인장·고유자산운용 본부장 등을 역임했고 미래에셋과 합병 후엔 멀티에셋자산운용 대표를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해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추천으로 우리자산운용 대표로 선임됐으며 올해 3월부턴 우리종합금융 대표를 맡아 우리투자증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달 1일 우리종합금융은 소멸하고 한국포스증권은 우리투자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 우리종금과 포스증권의 자기자본은 지난해 말 기준 각각 1조1000억원, 500억원으로 합병 후 약 1조1500억원의 자기자본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업계 18위로, 지주 산하에 있지만 아직은 중소형 증권사에 불과하다. 목표로 하고 있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되려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을 갖춰야 해 못해도 3조원을 추가 수혈해야 한다.
관건은 인력 확보부터 인프라 구축까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우리종금은 지난 3월 대우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대표를 역임했던 이영창 사외이사, 미래에셋증권 출신인 양완규 IB총괄 겸 기업금융1본부 총괄이사, 김범규 디지털본부장, 홍순만 인사본부장, 김진수 경영기획본부장을 영입했다. 남 사장이 취임하면서 영입한 인물들로, 우리종금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속 ‘5′로 추정된다.
또 하나 문제는 라이선스다. 포스증권이 보유 중인 라이선스는 펀드 판매 쪽에 치중해 있다. 증권 쪽 라이선스는 집합투자증권에 대한 투자매매업과 투자중개업 그리고 신탁업뿐이다. 우리투자증권은 투자중개업·투자매매업 등 모든 라이선스를 갖춰 출범하겠다는 계획이다. 남 사장은 국내 유일한 종합금융업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디지털과 기업금융(IB)에 강한 증권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다음은 남 사장과 일문일답.
─초대형 IB가 되기 위해서 지주로부터 자금 수혈 등 계획이 있나.
“지난해 말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초대형 IB 진입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자체 수익을 내는 것과 동시에 외부적으론 2차 M&A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업 계획에 맞는 매물이 나오면 바로 합병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 언제든지 열려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 도는 연내 2조원 증자 소문은 사실무근이다. 현재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이 정도면 시작하는 데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고, 진행을 하면서 추가로 필요한 돈이 있으면 그때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금융그룹과 협업 계획은.
“당연히 협업을 생각하고 있고,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계열사인 증권사는 그룹 내 은행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증권사에 비해 어드밴티지(유리한 장점)를 갖고 있다. 은행은 자산관리(WM) 분야에서 수많은 고객을, IB 분야에선 방대한 기업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서 힘을 빌리고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종합금융이 현재 할 수 없는 주식자본시장(ECM), 부채자본시장(DCM), M&A 등 전통 IB 부문도 은행과 협업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 인력도 뽑고, 리스크 관리 체계도 맞추고 준비를 하고 있다. 궤도에 오르기까진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순차적으로 전통 IB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최근 중소형사는 WM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WM 분야는 어떤 구상을 그리고 있나.
“자체적으로 프라이빗 뱅커(PB) WM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은행과 힘을 합쳐 고객과 상품 등을 공유하려 한다. 사실 중소형 증권사는 리테일 부분 투자가 쉽지 않다. 금융그룹이 없는 상황이면 정말 어렵다. 이 부분에서 한계점들을 우리투자증권은 빠르게 커버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발주자다 보니 안팎에서 견제가 심할 것 같다.
“금융지주의 주가가 그룹을 대표한다. 그리고 이 주가를 움직이는 건 밑에 있는 계열사가 얼마나 잘하는지에 달렸다. 물론 계열사끼리 누가 더 잘하느냐로 경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힘을 합쳐 다른 그룹보다 잘하는 게 더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내년 1분기엔 우리금융그룹의 새로운 통합 애플리케이션(앱)인 ‘뉴 원(New WON)에 신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연결해 그룹 내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우리금융이 다른 금융그룹 사이에서 자본시장 쪽이 약한데, 이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결국 투자자, 즉 금융소비자에도 유익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왜 다른 중대형 증권사가 아닌 규모가 작은 포스증권인가.
“증권업을 시대별로 나누자면 초대형 IB가 나오기 전인 증권 1.0, 초대형 IB가 나오고 양극화가 생기기 시작한 2.0, 그리고 수수료 수입은 없어지고 모든 비즈니스가 디지털·인공지능(AI)화 되는 3.0 등으로 나뉜다. 이미 지점이 많고 2.0 시대에 머물러 있는 중대형 증권사는 3.0으로 전환하는 데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데 포스증권은 지점이 하나도 없다. 카드를 건너뛰고 현금에서 바로 디지털 화폐로 간 인도네시아처럼 곧바로 전면 디지털화된 증권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포스증권이 펀드 판매 관련 라이선스만 가지고 있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증권업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종합금융이 이미 IB 분야를 하고 있으니 인력, 네트워크, 자본금만 키우면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다. 성실히 준비해 모든 라이선스를 따는 것과 동시에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올해 말까지 신규 MTS 개발을 마쳐 개인 고객 대상 국내 주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벤치마킹하는 증권사가 있나.
“디지털 분야는 토스증권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토스증권은 모바일 쪽으로 아주 뚜렷한 족적을 남기면서 앞으로 가고 있다. 해외 주식 투자 관련해서도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해 샘플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다음으로 종합증권사로서 혁신성이 있고 리테일 분야에서도 앞서 나가는 회사로는 미래에셋증권을 참고하고 있다. 덩치는 크지만 상장지수펀드(ETF), 해외 투자 분야에서 아주 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처럼 금융그룹 산하 증권사에선 KB증권이 잘 커왔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잘하고 있는 증권사의 장점을 최대한 흡수해 빨리 좋은 경쟁자가 되고자 한다.
─이들 증권사 인재를 영입할 계획도 있나.
“그런 건 아니고 시스템을 참고하겠다는 의미다. 증권사별로 성과 보상이나 평가 제도, 비즈니스 모델 등 세부적인 과정을 보고 있다. 여기에 이제 우리금융의 기업 문화가 합쳐지면 좋은 증권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본시장에서 경쟁해야 하기에 자본시장 DNA를 먼저 갖춘 다음에 우리금융그룹 위상에 어울리는 증권사가 되도록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할 계획이다.”
─서로 다른 두 회사가 합쳐지는 데다가 외부에서 인력 충원도 많은데 통일된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인위적으로 ‘우리는 하나다’라고 하기보단, 기업이 성장하면 좋은 기업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투자증권은 중소형 증권사로 시작하기에 우리금융그룹이 뒤에서 백업만 해준다면 시너지 효과로 성장할 일만 남았다. 성장하는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이 성취감을 맛보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이 위에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예전에 대우증권이 잘 나갔던 이유 중 하나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걸 제가 만들고 싶다.
일각에선 우리가 연봉 1.5배를 주고 인재를 데려온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대부분 수평 이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아무것도 없는 이 회사에 오는 직원들 대다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증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개인적으로 직원의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새로 출범하는 증권사의 직원으로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동시에 전문성을 가진 직원이 제대로 평가받고 대우받는 문화를 만들 예정이다. 즉 성과주의에 기반한 보상 체계를 통해 자본시장 DNA를 갖추면 자연스럽게 팀워크도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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