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건설사들의 미청구공사 금액이 조단위로 늘어나면서 ‘금융위기 데자뷔’를 떠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2015~2016년 유동성 악화에 시달렸다. 금융위기 당시 중동 저가수주로 해외건설 부문에서 미청구 공사 금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미청구공사 금액은 2022년 3조7347억원에서 지난해에는 5조3352억원으로 늘었다. 1년새 1조6005원이 늘어난 셈이다. 삼성물산은 같은 기간 1조1201억원에서 1조8443억원, 대우건설은 1조2053억원에서 1조2953억원 등으로 늘었다. 해외와 국내 미청구공사금액을 합친 금액이다.
미청구공사란 건설사가 공사를 하고도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금액을 말한다. 공정 기간이 오래 걸리는 건설업 특성상 통상 건설사들은 공사진행률을 감안해 미리 수익으로 잡아놓는다. 인식한 수익만큼 공사대금을 받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동안 잡힌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바뀌게 된다. 매출채권(공사대금)에 비해 회수가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금액이 급증할 경우 유동성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3년경 대형건설사들이 일제히 ‘어닝쇼크’를 냈던 일을 떠올리기도 한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사들이 건설경기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출혈 경쟁을 벌였다. 당시 입찰가격을 수 억원씩 낮춰 부르는 덤핑수주가 비일비재했고 그 결과가 부메랑으로 몇 년 뒤 부메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지금의 미청구금액 증가는 과거완 다르다고 보고 있다. 미청구금액이 늘어난 만큼 매출이 늘어 매출 대비 미청구금액은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청구공사 금액이 가장 큰 현대건설의 경우 매출액 대비 미청구공사 비중은 2개년 연속 18% 수준으로 동일하게 관리되고 있다. 삼성물산 역시 미청구공사 금액 비율은 크게 늘었지만 매출액 대비 미청구공사 비중은 9%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공공공사 등 선수금을 받고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미청구공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발생하더라도 원가 인상분을 인정해주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민간 주택사업의 경우에도 중도금 대출 단계로만 넘어 간다면 도급사업의 미청구공사가 현실화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또 미청구금액의 상당수가 국내 정비시장에서 일어난 것이다. 입주를 해 수분양자들이 잔금을 치르면 미청구금액이 줄어들 것이란 말이다. 1년새 1조원 넘게 미청구금액이 늘어난 현대건설의 경우 올 하반기 준공시기가 집중돼 있어 올해를 넘기면 미청구 금액이 상당 규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김민형 중앙대 건설대학원 겸임교수는 “과거 미청구공사액은 상당부분 중동 등 해외에서 발생했다”면서 “해외에서 발생한 건 리스크로 분류를 했고, 당시 어닝쇼크가 일어났었던 것”이라면서 “국내에서 일어난 미청구공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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