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여성이 물에 빠졌어요” 새벽 3시쯤 다급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신고자는 남편이었다.
전국에 일제히 폭우가 쏟아지던 2023년 7월15일, 30대 남성 A 씨(30)는 “아내와 함께 캠핑과 낚시를 하기 위해 인천 잠진도에 왔다. 차에 짐을 가지러 다녀온 사이 아내가 바다에 떠내려가고 있다”고 긴박한 목소리로 해경에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 캠핑 중 아내 물에 빠졌다 남편 신고…30대 아내 결국 숨져
다급한 A 씨의 전화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과 119구급대는 어두운 새벽이었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에 해상에서 아내 B 씨를 발견했다. 하지만 B 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결국 숨졌다.
사건은 단순한 실족 사고사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B 씨의 시신, 특히 머리 주변에는 무언가에 가격당한 듯한 외상 흔적과 몸에 난 다수의 멍 자국을 이상하게 여긴 해경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해 주변 CCTV와 A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확인한 해경은 사건 발생 2일 후 아내를 살해하고 사고로 위장하려 한 남편 A 씨를 긴급체포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B 씨에 대한 부검을 의뢰했다.
◇ CCTV에 포착된 돌 던지는 남편의 모습…증거 인멸 정황도
CCTV엔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인천 중구 덕교동 잠진도 제방에서 B 씨를 바다로 밀어 빠뜨린 A 씨의 모습이 포착됐다.
영상 속 A 씨는 바다에 빠진 B 씨가 수위가 높지 않아 허우적거리며 헤엄쳐 나오려 하자 주변에 있는 돌을 여러 차례 던지기 시작하다 급기야 A 씨는 큰 돌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B 씨의 머리에 내리쳤다. B 씨 시신의 머리 부위에서 발견된 외상 흔적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 A 씨가 물에 엎드린 채 떠 있는 아내에게 접근하여 사망 여부를 확인하고 떠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 등도 포착됐다.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A 씨가 범행 전 휴대전화로 물때를 검색하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로 아내에게 “어디냐” 라고 보내며 찾는 듯 여러 번 전화를 건 사실 또한 밝혀졌다. 이는 범행 이후 실족사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 외도사실 발각, 명품 가방 구입 등 씀씀이 불만에 살해 결심
어떤 억하심정이 있었기에 살려고 발버둥 치는 아내에게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2020년 6월 결혼한 이들 부부에겐 3살 자녀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 3개월 만에 자신의 외도 사실이 아내에게 들킨 A 씨는 이후 아내에게 심한 추궁과 감시를 당하기 시작하자 결혼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다툼 또한 잦아졌다. 또 자신이 번 돈을 아내가 많이 쓴다고 생각하며 더 큰 불만을 품게 됐다.
범행 전에도 A 씨는 명품 가방 여러 개를 구입했다고 자랑하는 아내를 보며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지속 못하겠다는 생각에 살해를 다짐했다.
마침 폭우가 쏟아지며 오락가락한 기상 상태가 이어지자 평소 수영 못하는 아내를 물에 빠트려 살해한 후, 실족사인 것처럼 위장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A 씨는 “캠핑과 낚시를 하자”고 B 씨를 유인해 차량에 태운 뒤 잠진도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도착한 A 씨는 새벽 아내를 뒤에서 밀어 물에 빠뜨려 살해했다.
◇ “숨진 아내에게 할 말 없나”…침묵한 남편
잠진도에서 남편과 함께 캠핑하러 갔다가 익사한 B 씨가 남편에 의한 타살이라는 정황 드러나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18일 오후 구속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한 A 씨의 모습은 수갑이 채워진 두 손으로 천 가리개를 덮고 있었고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얼굴 전체를 모두 가렸다.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느냐” “왜 거짓 신고를 했느냐” “숨진 아내에게 할 말 없느냐”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물음에도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 검찰 30년 구형…인천지법 1심서 23년형 선고
10월 31일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 류경진)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A 씨의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와 열화상카메라 영상이 공개됐다.
해당 영상에는 A 씨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살해 후 접근하는 이유를 묻자 “사망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다”며 무정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애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큰 돌을 들어 올려 피해자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는 잔인함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A 씨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본인도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에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피고인의 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양육비를 보내는 등 피해자 유족과 합의하려고 하지만 피해 유족들이 큰 충격을 받아 당장 합의가 쉽지 않다. 넉넉한 기일을 주시면 피해복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황당한 요청을 하기도 했다.
검찰은 10월 31일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 류경진)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한 A 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이후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12월 21일 선고 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고, 이전에도 가정보호사건 송치 전력이 있지만, A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뒤늦게나마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징역 23년을 선고받자 A 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한 검찰은 “1심 재판부의 양형이 지나치게 가벼워 부당하다”며 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남편 A 씨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 항소심서 5년 형 더 늘어 “CCTV 없었으면 실족사 처리됐을 수도”
2024년 7월 2일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재권)는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5년 늘어난 징역 28년을 선고했다.
A 씨는 항소심에서 “B 씨의 부모에게 합의금으로 3600만 원을 지급했다”며 감형을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범행 중대성을 고려하면 감형 사유가 되지 못한다며 형이 가볍다는 검찰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또 “CCTV 영상이 없었다면 피고인의 의도했던 것처럼 실족사로 처리됐을지도 모른다”며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믿었던 남편으로부터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고인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1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고 설명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