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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탄핵’은 군주제 유물 …민주당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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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3일 100만명 이상 동의를 받았다 사진은 국회 홈페이지 화면 그래픽아주경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3일 100만명 이상 동의를 받았다. 사진은 국회 홈페이지 화면. [그래픽=아주경제]

14세기 유럽에서 왕 견제 수단으로 등장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과반수 정당이 되면서 전에 없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탄핵’이라는 말이다. 민주당은 입만 열면 탄핵을 공언한다. 최근 들어서만 검사 4명과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주장도 시도 때도 없이 들고나온다. 국회청원동의에 올라온 윤 대통령 탄핵안에 100만명이 동의했다며 탄핵 청문회를 열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탄핵 제도를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견제하는 보배로운 칼인 듯 여긴다. 그러나 탄핵 제도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민주당식 사고방식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알게  된다.

 

원래 탄핵제도는 14세기 유럽 군주제 국가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당시 의회는 성직자와 귀족이 주도했다. 그런데 14세기 들어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바뀌어 갔다. 우선 중산 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다. 중산계급은 성직자와 귀족이 주도하던 의회에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당히 참여하게 됐다. 동시에 군주는 군대 유지와 전쟁 대비, 행정 유지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중산계급에 세금을 부과하게 됐다. 

 

이에 의회는 군주가 요구하는 세금이 정당한가를 따지기 위해 군주에게 재정 보고서를 요구했고 회계 심사를 시작했다. 징세 과정도 감독했다. 의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예산 및 재정에 관한 권한을 확보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게 오늘날 국회의  예산·결산 심의권이다. 의회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정치적 통제에도 나섰다. 군주가 특별 보조금을 요구하면 지급 여부를 승인하기 전에 군주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군주가 임명한 대신(大臣)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찍어 해임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군주는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의회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문헌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1340년과 1371년에 군주가 몇몇 대신을 의회 요구에 따라 해임했다고 한다. 의회는 1376년에는 왕에게 부정부패를 저질러 해임 대상에 오른 대신들에 대한 심판권을 상원으로 넘기도록 강요해 관철시켰다. 당시 상원은 대법원 역할을 했다. 군주가 의회 요구에 따라 대신을 해임하고 그 심판권을 상원으로 넘긴 것이 오늘날 탄핵 제도의 기원이 됐다. 영국 영향을 받아 미국은 지금도 하원이 탄핵 소추를 의결하면 상원이 탄핵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 제도는 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국민대표기관인 의회가 행정부나 사법부를 견제하는 장치로 발전했다. 이런 점에서 탄핵 제도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선 선거로 심판…탄핵은 예외적 비상 수단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탄핵 제도가 애초 군주제 국가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군주제 국가에서는 왕이 아무리 잘못해도 의회가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왕은 세습제이고 종신직이라 한번 왕위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왕위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이에 의회는 왕에 대한 불만을 왕의 신하인 대신을 향해 풀었다. 왕이 임명한 대신을 해임하도록 요구해 간접적으로 왕을 견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주 국가에는 왕이 없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중임제이다. 중임제에서는 첫 번째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선거를 치러 현직 대통령을 재선하거나 낙선시킨다. 국민이 선거로 대통령과 그 정권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임제라 대통령을 직접 심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대선 후보 대신 다른 정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을 심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정당 간 정권 교체가 그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 중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총선이나 지방선거 역시 심판 무대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검사 등이 잘못하면 정권이 총체적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게 된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도 대통령과 그 정권에 대한 심판의 결과이다. 총선 때 윤 대통령의 불통,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과 명품백, 해병대원 사건 수사 외압,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및 출국, 검찰 공화국 논란 등이 주요 이슈가 됐었다. 요즘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 사유로 주장하는 것들이다. 국민은 이런 논란들에 대해 민주당 압승, 국민의힘 참패라는 선거 결과로 국민의 뜻을 나타냈다.  이게 바로 선거를 통한 권력 견제이고 심판이다. 

 

이렇게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이 대통령과 정권을 직접 심판할 수 있다. 따라서 탄핵 제도가 갖는 의미가 군주제 국가에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 제도가 있으니 탄핵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과 정권을 심판할 수 있으니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나 검사 등을 굳이 탄핵 대상으로 삼지 않아도 된다. 이제 탄핵 제도는 권력을 견제하는 통상적인 수단이 아니라 불가피한 때만 사용하는 비상 수단이 됐다. 선거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위법 행위가 너무나 중대해서 당장 자리에서 해임하지 않으면 안 될 예외적인  경우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헌재, 탄핵 요건은 ‘파면을 정당화할 중대한 위법’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탄핵 제도의 기본 취지를 살리고 그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 헌법 제65조는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 탄핵은 곧 파면이기에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탄핵 사유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위반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탄핵 제도를 남용해선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정한 검사 4명의 혐의는 과연 헌법재판소가 밝힌 탄핵 요건에 해당할까? 검사 4명 중 3명은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연관돼 있다. 박상용 수원지검 검사는 ‘대북 송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박 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를 이재명 전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원지검은 “상식적으로 36년간 정치활동을 하고 국회의원과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을 지낸 이화영 피고인을 상대로, 그것도 민주당 법률위원회 소속 변호사가 참여한 상황에서 거짓 진술을 하라고 회유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어떠한 검사도 직을 걸고 그처럼 무모한 짓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사의 위법한 수사권 남용을 국회의 탄핵권으로 막자는 취지”라고 했다. 어떤 사건에서든 수사권을 위법하게 행사했다면 그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 강요로 허위 진술을 했다면 그 진술은 유죄 증거로 인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규정을 어기고 수집한 증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까지  민주당의 탄핵 추진 대상이 된 검사들이 저질렀다는 행위가 법정에서 논란이 된 적이 없다. 검사로부터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이화영씨는 이재명 전 대표의 방북 대가로 송금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9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자금을 댄 김성태 전 쌍방울 대표는 이화영씨와 공모한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됐다. 민주당이 탄핵 사유로 주장하는 내용들은 소문에 근거한 의혹일 뿐이다. ‘카더라 탄핵’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의혹에 근거해 누구를 파면하라고 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더불어민주당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당론으로 채택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현재 ‘2인 체제’로 불리는 방통위에서 두 명의 위원만으로 중요 결정을 내리는 상황 자체가 직권남용이며 위법”이라고 했다. 현재 방통위원은 법정 정원 5명 중  2명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법 제13조는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하며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인 이상이 요구하면 회의를 열 수 있으니 회의를 연 것 자체는 합법이다. 

민주당, 탄핵 남발하다 국민으로부터 ‘진짜 탄핵’ 당할 수도
 

문제는 의결 요건인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다. ‘재적’의원이 법률상 정원인 5명을 뜻하느냐, 현재 근무하는 2명을 뜻하느냐이다. 민주당은 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법 해석상의 문제이다. 법 해석의 문제는 법원에 맡기면 된다. 방통위가 2인 체제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법원에 무효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법원이 유효라고 결정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 무효라고 결정하면 그간의 방통위 결정은 모두 효력을 잃는다. 앞으로 민주당에 불리한 결정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이런 통상적이고 간편한 절차를 놔두고 비상 수단이라 할 탄핵부터 꺼내들었다. 민주당의 진짜 의도가  방통위 운영의 정상화가 아니라 방송 장악을 위한  정치공세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견제하는 보편적이면서 최종적인 수단은 선거이다. 탄핵은 불가피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비상 수단이다. 탄핵을 남발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라는 민주 제도가 없는 수백년 전 군주제 국가에서 사는 것이나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다가는 국민으로부터 ‘진짜 탄핵’을 당할 수 있다.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 받는 게 그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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