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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폭염]⑤ 폭염 재난, 아직도 혼자서 견디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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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직 한여름은 시작도 안 했지만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가마솥더위’ ‘불볕더위’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말 그대로 무더위 기세가 ‘괴물’에 가깝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괴물폭염’이 바꿔놓은 일상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1. 경기 수원시 장안구 9평 빌라에 홀로 사는 김 모 할머니(83) 집에는 올여름 첫 폭염특보가 발령된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에어컨을 작동한 흔적이 없다. 침대 위 설치된 냉방 면적 17.8㎡짜리 벽걸이 에어컨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김 할머니는 “에어컨 틀면 전기료 폭탄 나온다”며 “더우면 창문 열고 죽을 것 같으면 선풍기를 튼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50대 여성 이 모 씨(56)는 “어르신, 에어컨 안 틀고 계셨다가는 쓰러지세요”라고 하지만 김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씨는 평일 주 5회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김 할머니를 돕고 있다. 한낮 가장 더울 시간대 어르신 집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나면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는 이 씨. 그는 “제가 더운 건 괜찮다”며 “퇴근하고 어르신 혼자 계실 때 쓰러지실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 씨는 퇴근하기 30분 전, 찬물로 김 할머니 목욕을 시켜드린다. 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르신 온열질환 예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선풍기 앞에서 김 할머니 물기를 닦아 드리며 이 씨는 “어르신 혼자 계시다가 땀나면 지금처럼 찬물로 몸 적시고 선풍기 바람 쐬고 계셔요”라며 “에어컨 틀면 더 좋고…”라고 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까지 이 씨는 거듭 신신당부했다.

#2. 경기 모 지역 산업단지에서 공장 굴뚝 작업을 하는 20대 청년 최 모 씨(27). 최 씨가 이 일을 한지는 4년 정도 됐다. 오후 3시 30분쯤 한창 바쁜 시간대 잠깐 짬을 내서 취재에 응해준 최 씨에게 “땡볕에서 장시간 일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은 사치였다. 최 씨는 “당연히 힘들다”고 했지만 “아직 젊어서 그런가, 다행히 지금까지 건강 문제는 없는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최 씨는 ‘시간당 몇분 정도 쉬느냐’는 질문에 “쉬는 시간은 그때그때 달라서 말하기 어렵다”며 “보통 10분 정도 쉰다”고 답했다. 최 씨 쉼터는 다름 아닌 ‘본인 차’였다. 그는 “보통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고 앉아 있는다”며 그런데 “그늘이 없는 땡볕에 주차한 날에는 에어컨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작업장 내 근로자를 위한 휴식 공간이 따로 없느냐’고 묻자 “이제 일하러 가야 한다”며 이내 답변을 피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찌감치 폭염을 ‘가장 위험한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도 2018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해 한파와 폭염을 자연재해로 추가했지만 국내에서 폭염은 여전히 정부가 아닌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80대 노년 여성, 50대 중년 요양보호사, 20대 청년 근로자 모두 정부의 책임이나 역할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폭염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사회적 문제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지구 온난화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며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 등 장기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폭염에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는지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책 마련 또한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현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폭염은 개인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하는 전 세계적인 재난 상황”이라며 “점점 아열대 기후가 되는 환경 속에서 폭염이 심해지면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우리 사회 아직 부족하다”며 “폭염에 적응하기 위한 문화적·법률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에어컨이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지만 일반 가정에서 마음 놓고 틀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2014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는 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기가 한정된 필수 공공재인 만큼 절약을 유도해야 한다는 사회정책의 필요성 등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다만 폭염이 일상화돼 에어컨이 생필품을 넘어서 생명줄이 된 이상 누진제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다시금 힘이 실리고 있다. 30대 여의도 직장인 남성 A 씨(32)는 “지난달 에어컨 꺼짐 예약을 안 해놓고 몇 번 잠든 적 있었는데 전기료 폭탄을 맞았다”면서 “그 후로 아무리 더워도 자기 전에 에어컨을 끄고 자는데 더워서 잠을 설친다”고 호소했다.

‘폭염 시 쉴 권리 보장’도 중요한 문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사업주는 폭염·한파 시 근로자 보건 조치가 의무화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을 통해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씩 쉬라고 권고하고 있다. 다만 하위 법령의 구체성 저하, 강제조항 부재 등 이유로 실효성에 대해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 위원은 “현행 산안법 등은 사업주가 그늘을 준비해야 한다는 정도만 돼 있다”며 “그러니까 반복적으로 특정 사업장이나 장소에서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1대 국회에서 ‘폭염·한파 시 작업중지권 보장’을 담은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이번 국회 들어서 박정,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을 또 발의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9일 “폭염이 심할 때는 잠시 쉬도록 해 무리한 작업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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