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Chambly'(1965)는 화면 중앙에서 교차하는 검은 선들이 흙색 배경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저술가 앙드레 말로는 이 그림을 보고 “마침내, 서양의 서예가”(Finally, a Western calligrapher)라고 말했다. 그림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추상화가 조르주 마티유(Georges Mathieu, 1921~2012)이다.
페로탕 서울이 오는 8월 24일까지 마티유의 한국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마티유는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 유럽과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추상미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이전 시대의 주류이던 기하학적 추상화에서 벗어나, 내용보다 형식을, 의도보다 제스처를 선호하는 시각적 언어를 통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표현을 지향했다.
1947년 프랑스 비평가 장 호세 마르샹은 그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서정적 추상화’라 칭했다. 그의 작품은 물감 튜브를 캔버스에 직접 짜내고, 긴 붓을 이용해 그려진 서예적인 선의 질감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0~1970년대 제작된 마티유의 대표 작품들이 선보인다.
1967년작 ‘Siranday’는 과감한 제스처가 교차하며 서로 엮인 결과로 작가의 창조적인 혁신을 잘 보여준다. 튜브를 짜내는 데서 비롯된 ‘튜비즘’이라고 불린 이 양식은 마티유가 필수적이라고 여긴 빠른 속도와 에너지로 제작됐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재료와 거의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기호를 해방시키기 위한 탐구에 이끌린 마티유는 동양 예술을 연구하는 데 약 10년을 할애했다. 1970년작 ‘Celadon’은 서예의 유서 깊은 전통을 추상화와 연관 지은 작품이다.
후기작에서는 마티유의 뛰어난 색채 사용이 드러난다. ‘Forez'(1970), ‘Tamatia'(1979), ‘Datura'(1980)는 짙은 카드뮴 레드부터 노랑, 마젠타, 황토색, 빛나는 옅은 하늘색까지 아른거리며 폭넓은 색채의 풍성함으로 가득하다.
중세 시대 저명한 교황의 이름을 딴 작품 ‘Innocent III'(1960)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예술적 성숙은 영성의 성장으로 특징지어진다. 마티유의 작품세계는 점차 혼합주의적 범신론으로 진화해 1980년대에는 ‘우주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정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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