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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28] 홍콩에서 태풍 프라피룬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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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특색 있는 교통수단인 2층 트램. 트램이 운행되는 도시는 많지만, 2층짜리 트램은 드물지 않나 싶다./신양란 작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기상 이변의 규모와 횟수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이다. 폭염과 홍수, 가뭄과 태풍 등이 그러하다.

삶의 터전을 파괴할 정도로 심각한 기상 이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그곳에 사는 주민들일 것이다. 하지만 운 나쁘게 그 시기에 그곳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그 또한 난감한 상황이다.

사실 여행은 날씨 운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멋진 지역을 선택했다고 해도,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해도, 풍백(바람의 신), 우사(비의 신), 운사(구름의 신)가 심술을 부려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다. 2006년 8월 초에 우리 가족이 홍콩에서 겪은 일도 그런 경우였다.

우리는 동남아시아 몇 개 도시 여행을 무사히 마친 다음 8월 1일 오후에 홍콩 첵랍콕공항에 내렸다. 홍콩은 우리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였다. 그런데 공항 밖으로 나오고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며 날씨가 영 좋지를 않았다. 산뜻하지 못한 출발이었다.

나는 홍콩 여행에 대비하여 가이드북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철저히 준비를 했다. 가이드북 속 명소를 꼭 가봐야 할 곳, 가보면 좋을 곳, 가볼 필요는 없는 곳으로 나누어 표시해 놓기까지 했다.

백만 불짜리라는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지만, 비바람이 거세지는 바람에 버티질 못하고 금세 내려와야 했다. /신양란 작가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비와 바람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백만 불짜리’라는 홍콩 야경을 보기 위해 올랐던 빅토리아 피크에서는 얼마 못 버티고 내려와야 했고, 기대했던 정크선 투어도 물살이 요동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날 안타깝게 한 것은 마카오에 갈 수 없게 된 점이다. 마카오는 홍콩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기에 큰 기대를 했는데 배가 뜨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령 배가 뜬다고 한들 마카오 날씨 또한 홍콩과 비슷할 터이니 무슨 관광을 할 수 있겠는가. 속절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의 홍콩 여행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게 끝이 났다.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다가 들른 홍콩 마담투소 박물관. 유명 인사들의 밀랍 인형이 전시되고 있는 곳인데, 당시 드라마 <겨울연가><div  class=

가 열풍을 일으키던 때라서인지 배용준 씨의 인형도 있어 기념 촬영을 했다. 현재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신양란 작가”>

나흘째 되는 날, 우리는 아침만 먹은 후 공항으로 갔다. 어차피 홍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여행을 망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난감한 일이 우릴 맞이했다. 알고 보니 우리 여행을 망친 주범은 태풍 ‘프라피룬’이었다. ‘비의 신’이라는 뜻을 갖는 그 태풍 때문에 전날부터 항공기 이착륙이 제한된 것이다.

공항은 취재진과 여행객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한쪽에서는 항의 시위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무리가 바닥에 널부러져 잠을 자고, 또 다른 쪽에서는 체크인을 하겠다고 길고 긴 줄을 서 있고….

우리는 그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홍콩 여행에 대한 미련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태풍 프라피룬이 홍콩을 지나간 2006년 8월 4일 첵랍콕공항에는 취재진이 몰려들어 취재에 열을 올렸다. 강한 비바람으로 인해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어 공항이 난장판이 되었기 때문이다./신양란 작가

그뿐이랴. 끼니때가 되어 밥을 먹는 것도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었다. 식당마다 끝없는 줄이 이어졌고, 가까스로 내 차례가 되고 보니 음식이 떨어졌다고 했다. 어린 자식을 데리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더럭 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2시간 넘게 공항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며칠째 하염없이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고 있노라니, 길고 두렵게만 느껴졌던 첵랍콕공항에서의 시간이 문득 떠오른다. 지나고 보니 그조차도 여행의 한 부분으로 여겨져 그립기도 하지만….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영화 <중경삼림><div  class=

에 등장해 유명세를 얻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총 길이 800m로, 홍콩의 또 다른 명물이다. 상행만 에스컬레이터로 건설되었고, 하행은 도보로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신양란 작가”>제때 출발하지 못한 여행객들로 인해 공항 안은 인파로 넘쳐났다. 화면 앞쪽의 사람들은 케세이패시픽 항공사(홍콩 국적항공사) 사무실 앞에 모여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중이다. /신양란 작가
침사추이 해변 산책로에 조성된 ‘스타의 거리’는 홍콩 영화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홍콩 시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이소룡의 동상이 스타의 거리에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신양란 작가
홍콩 역사박물관에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홍콩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양란 작가
고깔 모양으로 만든 향이 천장 가득 걸려 있어 인상적인 셩완 만모 사원. 도교 사원으로, 중국 색채가 물씬한 곳이다./신양란 작가 만모 사원 근처에 조성된 골동품 거리.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값비싼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행자들이 소소한 기념품을 구입하기에도 적당한 장소이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갈 수 있다./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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