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기원전 100년 7월 12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났다. 로마 공화국의 정치가, 장군, 작가로서 활동했고, 탁월한 리더십, 군사적 천재성, 정치적 야망으로 공화국이 제국으로 전환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특히 웅변과 라틴 문학에 능숙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로마 내전 와중에 재산과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여러 직책을 거쳤다. 군인으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으며, 특히 갈리아 정복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이를 통해 그는 로마에서 영웅으로 칭송받고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높아졌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해 내전을 일으켰다. 그는 폼페이우스 등 정적을 물리치고 독재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는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달력 개정, 시민권 확대, 토지 개혁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영토도 확장했다. 기원전 44년 2월 15일 그는 원로원과 민회로부터 종신 독재관에 임명됐다. 공화정의 사실상 붕괴였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60여 명의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암살 가담자 중에는 그가 아끼던 부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다. 그가 죽을 때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쳤다고 알려졌지만, 근거는 없다. 이는 훗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등장하는 대사이며, 오늘날 믿었던 상대에게 배신당했을 때 사용되는 인용문이 됐다.
카이사르의 피살 이후 로마는 다시 한번 내전에 돌입했다. 여기서 그의 조카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장악하고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초대 황제로 등극한 후 카이사르를 신적인 존재로 추대했다. 로마 제국의 기초를 닦은 카이사르에게는 뛰어난 리더와 가진 독재자라는 두 가지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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