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김현일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 대장,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전기차 수요 감소 현상인 ‘캐즘’ 여파가 고스란히 담긴 상반기 성적표를 먼저 받아 들었다.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70%가량 줄었으며, 미국 첨단 제조 생산 세액 공제(AMPC) 혜택을 제외하면 그나마 벌어 놓은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선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보조금 혜택 유지 여부까지 불투명해진 만큼 업계 전반에서 올 하반기와 내년 성적에 대한 우려가 벌써 고개를 들고 있지만, 당사자인 LG에너지솔루션은 아직 불안 요소가 다 표면화 된 것은 아니며, 이에 대처할 준비 역시 진행 중인 만큼 힘든 시기를 버틸 여지만큼은 존재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1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기반해 지난 상반기 총 6367억원에 해당하는 AMPC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매출은 12조2906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17조5206억원 대비 29.8%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3526억원으로 같은 기간의 1조938억원 대비 무려 67.7% 감소했다. AMPC를 제외할 경우 2841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셈이다.
올해 2분기를 기준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8%, 57.6% 감소한 매출 6조1619억원, 영업이익 1953억원을 기록했다. AMPC 혜택은 4478억원으로, 이를 제외할 경우 영업손실액은 2525억원에 해당한다.
트럼프 상승세에 보조금 급감 가능성도… 업계 “아직은 우려일 뿐”
우려스러운 부분은 오는 11월 있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세가 점쳐짐에 따라 향후 배터리 보조금이 축소·철폐되면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높은 미국 생산 능력에 기반해 국내 경쟁사들 대비 AMPC 비중이 높은 만큼, 다가올 2025년 실적 규모가 급감할 여지 또한 존재하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 현지에서는 최근 진행된 TV 대선 토론을 통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령(81세)·건강 이슈가 불거지며 민심이 트럼프에 돌아서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쉰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나, 사회자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발언 기회를 넘기는 등의 모습으로 4년 전 대선 토론 당시의 여유와 명민함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주요 고객사들의 전기차 판매 목표 하향 조정과 배터리 산업 내 경쟁 심화에 따라 실적 재추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요 부진과 미국 대선에 따른 친환경 정책 축소 우려도 불확실성으로 잔존한다”라며 “하반기 및 25년 공급 과잉 규모는 축소될 것이나 공급과잉 상황으로 인한 불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LG에너지솔루션의 향후 실적 전망과 함께 미 대선 리스크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시점에서 트럼프가 당선 가능성이 높다 한들 이는 아직 가정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마치 손바닥 뒤집듯 바이든 정부에서 활성화된 전기차 전환 정책을 무로 돌릴 수는 없다 보고 있다. 전기차 시장을 둘러싸고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는 데다, 표심을 의식해서라도 그런 움직임을 바로 가져가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와 AMPC는 기본적으로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주려고 만든 정책이 아니다. 전기차 시대가 왔을 때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또 지금 배터리 관련 공장도 굉장히 많이 짓고 있을뿐더러 지자체 차원에서 투자 유치도 많이 한 데다 채용된 사람도 많다. 노조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게 다 표심인데, 그렇게 한 번에 무로 돌리진 못할 거다”라고 전망했다.
LG엔솔 “캐즘, 힘들지만 버틸 여력 있어… 내실 다질 기회”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은 캐즘으로 인해 전기차가 팔리지 않는 만큼 배터리업계 역시 어렵기는 하지만, 그간 미국을 포함한 국내외 공장 건설 등 외연적인 확장이 빨랐던 만큼 차라리 이 침체기에 내실을 다지는 한편, 숨을 돌리며 속도에 쫓겨 지나쳤던 부분들을 돌아볼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소형 전지와 에너지 저장장치(ESS)용 전지 부서가 전기차 배터리 분야와 삼각형 구조의 포트폴리오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어려움을 분담할 수 있어 그나마 캐즘 시대 피해를 최소화할 여력은 있다는 입장이다. 사측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 짓고 있던 ESS 배터리 공장 건설을 두 달 만에 중단한 것도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감소한 전기차 배터리 공장 가동률을 ESS용 배터리 제작으로 일부 전환해 끌어올리기 위함이라고.
한편 미래를 위한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애리조나주에 연간 27GWh 규모의 전기차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오는 8월 글로벌 브랜드 최초 양산을 목표로 차세대 제품인 ‘4680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 중이기도 하다.
일명 ‘테슬라 배터리’라고도 불리는 4680(지름 46mm, 높이 70mm) 배터리의 경우 기존 2170 배터리 대비 △에너지밀도 5배 △출력 6배 △주행거리 16% 향상 등의 특징으로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라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최근 프랑스 완성차 그룹 르노의 LFP 배터리를 수주하는 데 성공, 저가형 배터리 경쟁력 확보에도 시동이 걸린 상황이다. 현재 해당 시장은 CATL(닝더스다이)과 BYD(비야디) 등 중국 업체들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이들을 뚫고 수주를 따낸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일 르노의 전기차 부문 ‘암페어’와 계약을 체결해 2025년 말부터 5년간 약 39GWh(기가와트시) 규모, 전기차 약 59만대분의 LFP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해당 제품들은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생산돼 르노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에 탑재될 예정이다.
파우치 형태에 셀투팩(CTP) 공정이 적용돼 같은 공간 내 더 많은 셀을 넣는 것이 가능해 에너지 밀도를 약 5% 높일 수 있다. 열 전이 방지 기술, 공정 단순화 등을 통해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도 제고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르노의 LFP를 수주했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한국 배터리는 하이엔드급으로, 비싸지만 고용량·고출력인 것이 특징인 반면 중국 기업들은 밀도가 떨어지고 싼 배터리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라며 “하지만 결국 중저가 시장에서 만나게 돼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 역시 여기서 성과를 내야 했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례를 만들었다. 지금 시기에 꼭 필요한 발표였다”라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