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405년 7월 11일, 명나라의 환관 정화가 첫 번째 대원정(하서양, 下西洋) 길에 닻을 올렸다. 이후 이 원정은 1433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명나라는 강력한 군사적, 외교적 영향력을 세계 곳곳에 드러냈다.
15세기 초, 명나라는 영락제의 통치 아래 번영을 누렸다. 그는 강력한 해상력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광대한 영토를 확장하며 만방의 조공을 받는 황금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남쪽 바다에서는 무역이 점점 쇠퇴하고, 해적들이 창궐해 기존 무역로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았다.
이에 영락제는 새로운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고, 명나라의 위엄을 세계에 드러낼 대규모 해양 원정을 계획했다. 주요 목표는 새 무역로를 개척하고, 조공국을 늘리고, 교역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명나라의 강력한 해상 군사력을 과시하고 자신이 ‘천하의 제왕’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정화는 뛰어난 리더십과 해양 경험으로 이 대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수만 명의 병사와 수백 척의 함선으로 구성된 거대한 함대를 지휘해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험난한 항해를 감행했다.
당시 명나라의 함선 기술은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된 수준이었다. 정화의 함대에는 보선이라는 거대한 목재 함선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역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이었다. 이러한 첨단 함선들은 항해뿐만 아니라 해전에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정화의 대원정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명나라는 30여 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아내고, 해외 무역을 크게 활성화했다. 또한 명나라의 강력한 해상 군사력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이 원정은 막대한 비용과 인명 피해를 초래하고 새로운 문명과의 조우로 사회적, 문화적 갈등도 유발했다. 그럼에도 정화의 대원정은 명나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양 탐험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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